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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열흘쯤 있으면 추석입니다. 비록 주말이랑 겹쳐서 예년에 비해 연휴가 짧아 벌써부터 아쉬워 하는 분들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추석은 추석인지라 다들 많이 기대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수확의 계절에 풍성한 먹거리와 오랜만에 모이는 가족들이 주는 행복은 그 어느것에도 견줄 수 없겠지요.

추석을 앞두고 많은 분들이 주말을 이용해 벌초를 다녀오시던데요. 저도 지난 주말 큰집이 있는 고향마을에 벌초를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고백하면 전 이번 벌초가 처음입니다. 제 나이 이제 서른이 넘은지 꽤 됐지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 저만이 아니라 저희 사촌들도 그동안 참여를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매년 추석 앞두고 날을 잡아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를 비롯해 아버지까지 8남매(중 5형제)분들이 벌초를 도 맡아 하셨습니다. 이제 자식들을 좀 부려먹을 만 하신데요. 항상 어른들께서 직접 손수 해오셨습니다.

사실 요즘 보면 고향동네에서 벌초를 대행해주는 분들도 많고 이를 이용해 직접 오지 않고 벌초가 끝난 사진으로 확인만 하는 분들도 많이 늘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와중에 저희 집 어른들은 자식들도 동원(?)않고 20년 넘게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 벌초를 해오신 겁니다.

그럼 난생 처음 간 저의 벌초 체험기 한번 보실까요^^


묘소 가는 길 가장 먼저 저희 일행을 맞이해준 채송화입니다. (맞죠?). 
차들만 다니는 길가에 누구 보라고 이렇게 이쁘게 피어있는 걸까요..^^

그동안 어른들이 직접 벌초를 해오신건 아버지 형제분들이 많아서이기도 합니다. 8남매가 되는 분들이 벌초때면 모여 벌초도 하고 함께 모임도 가지곤 하셨죠. 자녀들이 모두 장성해 가족을 꾸리면서 명절은 자연스레 함께 모이기가 힘들고 할아버지 기일이나 벌초때 이렇게들 모이시는 거죠.


하여간 우선 할아버지 묘를 벌초하기 시작합니다. 막내 작은 아버지가 직접 예초기를 들고 벌초를 주도하십니다. 막내라곤 하지만 올해 쉰 여덟이시니 내후년이면 환갑이시네요. 요즘 평균 수명이 늘면서 사실 환갑이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어디가도 어린나이는 아니신데 말이죠..ㅎㅎ..그러고 보면 가장 맏이이신 고향큰집 큰아버님은 올해 일흔 일곱이십니다. 막내 작은 아버님이랑은 거진 20년 차이군요.


오랜만에 하는 벌초라 잡초랑 이런저런 잡목이 무성합니다. 최근  날씨도 좋고 무럭무럭 잘 도 자랐나 봅니다. ^^.


어디부터가 묘소인지 구분도 안되더니 서서히 모습이 드러납니다. 사진에는 계속 작은 아버님만 일하시는 것 같군요..ㅎㅎ...저도 나름 열심히 했답니다. 일하는 동안 사진찍기가 어려워서 제가 일한 증거는 없다시피 하다는..ㅡㅡ;...사진으로는 금새 싹 밀어버리는 것 같지만 상당히 시간과 힘이 든답니다. 벌초 안해본 분들은 말을 하지 마세요..ㅡㅡ;.


아버님 세대 분들이 대게 그렇듯 큰아버님 작은아버님 할 것 없이 어린시절부터 각종 농사일이나 집안일에 이골이 나셨습니다. 아직 어린 제가 근접하지 못할만큼 말이죠..^^.


잠시 예초기를 받아 제가 깍았던 자리를 작은 아버님이 다시 꼼꼼하게 깍고 계시네요..이거 참 부끄러워서리..ㅎㅎ.


올해 일흔이 되신 서울에 계신 둘째 큰아버님도 쉬시질 않습니다. 몸소 톱을 틀고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계십니다.


묘소 부근엔 밤나무가 저렇게 탐스럽게 많이 있습니다. 이제 제법익어서 입을 벌린 녀석들이 많더군요.


밤나무 아래에선 벌초가 진행되는 동안 어머니랑 작은 어머님이 밤송이 줍기에 열중하고 계십니다..^^. 이날 딴 맛있는 알밤들은 다시 꼭 구경시켜드리겠습니다.


나름 쉽지 않았던 할아버지 묘소를 벌초를 모두 마치고 둘러보고 있습니다.. 웬지 모두 뿌듯한 표정 들이시죠.


할아버지..웬만한 이발소, 미장원 가신 것보다 더 시원하니 잘 깎았죠. 맘에 드세요? ^^


할머니 묘는 약간 떨어진 위치에 있어서 조금 걸어가야 합니다. 가는 길에 황금색 물결을 만났습니다. 수확을 기다리는 논의 벼들이 너무도 탐스럽습니다. 속담에서 처럼 고개들을 모두 숙이고 있네요..^^


주변의 농작물들의 생명줄이라할 저수지도 보입니다. 꽤 깊고 물고기도 제법있답니다.


10분을 걸어 도착한 할머니 묘소입니다. 역시 수풀이 우거져 있지만 할아버지 묘소보다는 좀 수월했습니다. 산속에 있어서 잡초가 그리 빽빽하진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작은 아버지가 주도로...윙윙..예초기를 돌립니다. 헤헤..전 따라다니며 뒷처리만..ㅎㅎ


한쪽에선 아버지가 왕년에 소 여물에 쓰는 꼴 베던 실력으로 잔 잡초를 낫으로 직접 베고 계십니다. 솜씨가 대단 하십니다. 손이 안보여요..^^..


할머니 산소까지 벌초를 마치고 함께 묵렴. 잠시 고개숙이고 모두 정숙... 


할머니도 시원하시죠...^^... 살아계실땐 늘 쪽진 머리를 하고 계셔서인지. 무덤 뒤쪽이 왠지 허전합니다..ㅎㅎ


마지막으로 오늘 가장 수고한 예초기입니다. 사실 조금만 부주의 하면 사고가 많이 나기때문에 상당히 주의해야합니다. 이날 저도 좀 만졌는데.. 상당히 긴장되더군요..^^. (팔에 알이 배겼다는 ㅡㅡ;..)

어쨌든 이렇게 벌초는 끝이 났습니다. 근데 저희 집 벌초는 그냥 묘소를 정리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랍니다. 저희 큰집이 지리산이 가까운 경남 산청군(단성면)인데요. 벌초가 끝나면 아버님 형제분들이 모여 좀 떨어진 지리산 안쪽 어느 곳에 숙소도 잡고 매년 이른바 형제간의 1박2일을 보내신답니다.
평소 전국 각지 멀리 떨어져 지내시느라 못나눈 정을 나누는 시간이죠. 식사도 함께 준비해서 먹고 못다한 이야기도 나누고 집안의 각종 경조사나 문제들을 의논하기도 하고 나름의 회의도 하시더군요.
저도 물론 1박2일 내내 함께 했습니다. 이야기 꽃은 아주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고, 저는 당연히 가장 막내라 심부름은 도맡아해야 했습니다.

여기서도 "○○야~", 저기서도 "○○야~~".

심지어는 무슨 문제가 생겨 달려가니, 칠순을 앞둔 큰 어머님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애가 뭘 안다고 그래..."

하시지 뭡니까. ㅡㅡ;. 큰어머님 저 곧 딸래미가 첫돌 되는 애 아범이거든요. ^^.
하긴 뭐 평균 연령 60세가 넘는 어르신들 눈엔 혼자 따라나선 제가 아직도 애 같으셨을수도 ㅎㅎ . 아님 제가 무척 동안이거나요...호호.

요정도로 줄이고 이날 숙소가 너무 멋지기도 하고, 오늘 다 풀어놓으면 너무 길어지니 요 이야기는 조만간 다른 포스팅에서 또 전하기로 하죠..^^

아직은 어린 저이지만 이런 모습을 보며 역시 형제애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벌써 적게는 반세기, 길게는 70년이라는 시간을 형제로 지내오신 분들이니 그 인연과 삶의 궤적을 쉽게 짐작하기도 어렵지만 새삼 마음 찌릿하게 배우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하니 지금 제 딸래미가 자라면 웬지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우선 들더군요. 이래서 어른들이 하나는 외롭다고 하시나 봅니다. 집사람이랑 둘째도 한번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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