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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처

언젠가 오래된 지하차도를 걸어가던 중이었습니다. 
천장에 드문드문 설치된 조명이 부실해서인지 길 전체가 어둠컴컴하고 사람들의 왕래도 뜸한 칙칙한 길이었습니다.
멍하니 어둠속에서 걷고 있는데 우연히 타일이 벗겨진 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래되서 하나둘씩 벗겨지다가 그리된건지 아니면 누군가 화김에 뭘 던져 부숴진건지 알수 없었지만 고스란히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칙칙한 지하도는 이 상처 하나로 더욱더 음산하게 보였습니다.

걸음이 자연스레 멈춰졌습니다. 가만히 서서 한참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오래된 길인데다 오가는 사람도 없는 그럴만한 곳이려니 그냥 지나칠만도 했지만 왠지 그 모습이 눈에 박혔습니다. 그날따라 들고 나갔던 카메라를 들고 여러장을 찍었댔습니다. 

찍으면서 머리속을 계속 맴도는 단어는 '상처'였습니다. 
어디선가 흠씬 두들겨 맞고 살갖이 벗겨지고 피가 흐르는 상처, 씻어내고 약을 발라도 아리고 쓰린 상처, 시간이 지나도 나을 것 같지 않은, 두고두고 흉터가 되어 나의 일부가 되는 상처가 떠올랐습니다. 그날따라 제가 센치했던걸까요. 평소 감정기복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2. 2012년에게 

돌아보면 상처투성이입니다. 
시작부터 끝마무리까지 그야말로 상처로 얼룩진, 그것도 작은 생채기가 아니라 두고두고 흉터가 될 깊은 상처로 가득한 한해입니다. 
10년전 내 인생을 걸겠다 결심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그렸던 2012년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역사는 늘 진보한다는데 10년간 과연 무엇이 앞으로 나아갔는지 느껴지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입으로는 더이상 좌절할 여유는 없다며 다시 추스리자고 하지만 곳곳에서 느껴지는 절망의 바이러스는 많은 이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힘을 키우고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201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듯이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시간들을 맞이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다시 상처입을 걱정으로 죽지는 않습니다. 흉터가 남아도 그 또한 나의 일부입니다. 
2012년 한해, 스스로 얼마나 치열했는지, 내가 입은 상처에 빠져 옆에 선 이들의 상처는 모르고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반성해야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상처와 아픔과 후회와 번민은 일단 시간에 고스란이 담아 보내야겠습니다. 다가오는 2013년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상처만 쳐다보고 살수는 없으니까요. 2013년은 다가오고 앞으로의 10년에게도 그만의 희망과 꿈이 자라날 자리가 또 있을 거라 믿습니다. 

해가 바뀌는 순간이 365일 중 어느 하루가 다음날로 바뀌는 순간과 다를바 없지만 우리는 의지로 태어나지 않으면서도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듯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3. 빛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지하도 아래 그 상처난 벽면이 그렇게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상처를 비추는 불빛 때문이였습니다. 
불빛으로 인해 그 상처가 낫지는 않겠지만 그저 비춰지는 것만으로도 그 상처는 다른 존재가 됩니다. 그럴만한 길에 그렇게 있을 만한 부서진 벽이 아니라 누군가를 통해 드러나보이는 상처가 됩니다.

우리 모두는 상처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상처를 비추는 빛도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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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갈무리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자리를 잡았는데 어느새 새해가 밝았네요. 그럼 이 글은 작년부터 쓰고 있는 글이 되는 건가요. ^^

새해에는 좀더 많은 고민과 글로 이 공간을 채워야 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동안 뜸했지만 블로그 이웃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행복과 희망 가득한 한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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