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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변에서 하수관이 얼어서 막혔느니, 수도관이 동파되서 난리 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예년에 비해 심하게 불어닥치고 있는 한파에 가뜩이나 난방비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닌데, 없는 이들 살림살이에 한시름 더 얹어주는 한파가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이렇듯 모두가 피부로 추위를 절감하는 요즘 같은 시절에 학교 후배 녀석이 얼마전부터 천막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집안이 망해 거리로 쫒겨난 것도 아닌데 멀쩡한 집 놔두고 천막살이를 시작한 후배는 가뜩이나 결혼한지 몇 해 안된 신혼이기까지 합니다. 

지난해 말 소식을 듣고도 바로 달려가보지 못해 미안하던 차에 새해도 밝았고 해서 이달초 그 천막에 다녀왔는데요. 이 후배의 사연을 좀 전해드리겠습니다.


보시는 천막이 바로 후배녀석이 살림(?)을 차린 곳입니다. 천막이라고는 하지만 바람이 들세라 꽁꽁 덮어놓은 비닐과 도로쪽에 걸린 큰 현수막으로 싸여있어서 언뜻 보기엔 천막이라기보다 무슨 짐짝 같아 보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후배녀석은 이 천막에서 이른바 노상 천막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냥 항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당하게 해고한 회사에 복직하기 위해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갔던게 지난 1월6일 이었는데요. 그때가 벌써 36일째였으니 오늘로 47일째가 되는군요. 

그러니까 47일전 쯤 후배는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습니다. 해고 사유는 노동조합의 불법파업을 주도한 혐의입니다. 이쯤되면 아시겠지만 후배는 다니던 회사의 노동조합 간부였습니다. 그것도 한때(?) 대구지역에서 알아주는 잘나가는 노동조합의 간부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봄부터 시작된 회사의 집요한 노조파괴 공작에 싸움이 길어지더니 결국 이 지경까지 오게 됐습니다. 지난 1996년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2000년 대구 최초로 금속노조에 까지 가입했지만 이번을 계기로 금속노조 마저 탈퇴하고, 간부들의 해고 등 15년만에 노동조합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추운겨울임을 말해주듯 천막 앞에는 드럼통으로 만든 나무 난로가 싸늘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장작을 태울때는 뜨겁기만 한게 난로지만 불 꺼진 난로는 주변 어떤 것보다 추워보입니다. 


천막안은 나름 빼곡이 여러 물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한쪽 벽에는 해고는 됐지만 여전히 회사 달력이 걸려있습니다. 


천막살이는 총 4명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떤 기준에서 해고자들을 선별했는지 모르지만 현재 노동조합 간부가 2명 전직 간부가 2명입니다. 상황판으로 쓰이고 있는 화이트보드 맨위엔 현 정부들어 너무 자주 만나게 되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다! 부당해고 철회!"


나름 이런저런 살람살이는 갖춘다고 갖춰놓았지만 역시 남자들끼리의 살림이라 뭔가 부실해 보입니다. 컵라면과 과자봉지, 생수통이 이 곳의 일과를 말해주는 듯 합니다.


비록 천막살이이지만 역시 요즘은 인터넷 없이는 안되죠. 가뜩이나 회사측의 부당함에 싸우자면 조합원들과의 소통, 여론에의 호소는 필수입니다. 


천막 한쪽 천장에 몸벽보와 옷가지들이 걸려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출근할때나 주변에 부당해고에 대해 알리기 위해 나갈때 몸에 다는 몸벽보입니다. 참 간단한 말인데 참으로 절실한 말이네요. 세상 어떤 일보다 나쁜게 바로 밥줄 끊는거 아니겠습니까.


역시 노동현장에서 일하던 이들이라 뭐든 뚝딱뚝딱 잘 만드나 봅니다. 있을 건 다 있더군요. 조명도 어디서 임시로 백열등 하나 달아놓은게 아니라 나름 형광등입니다. ^^ 뒤쪽으로 PET병도 보이는데요. 찬기운으로 습기가 고여 떨어져서 임시로 받쳐 놓았다고 합니다. 그제야 이곳이 천막이구나 싶었습니다.


찾아갔더니 그래도 손님이라고 물을 끓여 차도 내줍니다. 밥통은 좀 오래되보이지만 주전자는 반질반질 신상 티가 납니다. 


찬막 내부 전경입니다. 좀 어지럽지만 나름 많은 이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천막살이 중인 제 후배 녀석입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천막농성이지만 그래도 자신감 있어 보여서 좋았습니다. 회사측의 해고가 너무나 명백히 부당하기 때문에 끝까지 버티고 반드시 복직하고 제자리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자신을 해고한 회사 로고가 새겨진 작업복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던데요. 추운겨울에 시작해 더 힘든 천막살이겠지만 끝까지 힘내서 꼭 복직하고 제자리 찾을 거라 믿습니다.  


이 날밤도 오늘밤도 후배는 이 전기장판에 몸을 의지해 하루를 마감할텐데요. 그나마 들어오던 전기도 회사에서 압력을 넣어 끊길지도 모른다고 하는군요. 앞으로도 추위보다 더한 난관이 많을 텐데요. 잘 이겨내기 바랍니다. 꼭 복직해야지. 힘내라 준효야. !!

덧>
후배가 다니는 회사는 대구 달성군 논공 달성공단에 위치한 상신브레이크라는 회사입니다. 매년 엄청난 흑자를 달성하는 잘나가는 회사입니다. 
이번 해고까지의 상황을 잠시 설명해둬야 할 것 같은데요. 시작은 외주 공장 설립 문제가 터지면서였습니다. 상신브레이크는 얼마전부터 계열사를 하나 둘 늘려가는 상황이었고, 그만큼 조합원들의 고용 불안이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단체협약에도 더 이상 외주 공장을 설립하지 않고 불가피하게 설립할 경우 노조와 협의한다는 내용이 이미 있던 상황이었는데요. 그러던 중 노동조합에서 ‘대외노조비’ 문건을 입수하게 됐습니다. 문건의 내용은 대구 달성2차 산업단지에 7천 평 규모의 외주 공장을 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에 명시돼있는 사항이니 교섭에서 논의하자고 했지만 회사는 거부했습니다. 거기에 타임오프를 빌미 삼아 노조가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고 몰아갔습니다. 그러더니 8월23일 회사는 덜컥 직장폐쇄를 단행했습니다. 
그런데 이 직장폐쇄에 대해 노동조합은 한발 물러서 현장복귀를 선언했지만 회사는 끝까지 직장폐쇄를 유지하며 노조파괴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결국 한사람 두사람 개별로 복귀시키고는 휴대폰까지 압수하고 회사에 가둬둔채로 합숙을 시키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방법을 동원해 결국 노조를 와해 시키고 말았습니다. 
결국에는 회사 측에서 임의로 선정한 이들을 부당해고 하고 수십명을 정직 징계하였습니다. 지역의 노동청 관계자들마저 이런 회사가 있다니 하면서 혀를 내두르는 상황인데요. 현재는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라는 결정을 받기 위해 심의과정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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