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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넘어 가는 어스름한 저녁, 골목 어귀에서부터 웬지 낮익은 기계음이 들려옵니다. 공장에서 나는 모터 소리 같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하는 시끄럽게 공회전하는 차 소리 같기도 합니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 오나 싶더니 바로 옆 골목을 뛰쳐나와 뽀얀 연기와 함께 저와 제 주변 상가를 순식간에 뒤 덮어 버립니다.

어느새 소리와 연기는 저를 스쳐 지나며 멀어집니다. 그런데 이 연기를 내는 소리를 따르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바로 동네 꼬마 들입니다.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연기 속으로 뛰어 듭니다.

바로 어린시절 방구차라 부르던 모기차가 만들어낸 익숙한 풍경입니다.

 

사실 요즘도 모기차가 골목을 다니며 방역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어린시절 추억속에나 있겠거니 했던 모기차를 직접 다시 보고 나니 나도 모르게 흥분되더군요. 급히 카메라를 꺼내 뒤를 쫒았습니다. ^^. 말그대로 방구차와의 추격전이 시작 됐습니다.


달려가 가까이서 본 모기차는 예전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 복잡해 보이지 않는 장비를 싣고 무엇인지 모를 기름통 같은 통과 호스로 이루어진 트럭은 특유의 소리를 내며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대구광역시 북구보건소라고 크게 찍혀 있더군요. 겉으로 보기엔 무슨 잡동사니를 싣고 다니는 차 같았습니다. ^^


당연히 뒤에는 아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릴적 골목에서 만나던 저의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다만 달라진건 속도감있게 모기차를 따라다니는 일련의 폭주족(^^) 들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 달랐을 뿐입니다.
물론 그 뒤를 두발로 달리는 아이들의 무리가 또 따라 다녔군요..ㅋㅋ



굉음을 내며 차 뒤 꽁무니에서 내뿜는 연기는 순식간에 동네를 자욱하게 덮어버립니다. 그리곤 또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사라지고 연기 또한 순식간에 공기중으로 흩어집니다. 다만 남은 건 휘발유가 연상되는 비린 냄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냄새 상당히 싫어하는 데 좋아하는 분들도 많더군요. 왜 그 툭유의 엔진 배기구에서 나는 냄새 말이죠..


어쨋든 그 잠시동안 세상은 구름속에 갇혀버립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특유의 굉음 외에는 ...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피리부는 소년이 떠오릅니다. 쥐떼를 없에 주었음에도 동네사람들에게 약속한 대가를 받지 못해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던 소년, 피리를 불면 아이들이 골목골목마다 쏟아져 나오고 소년의 뒤를 따릅니다.

피리가 모기차로 노래소리는 굉음으로 바뀌었지만 아이들을 모아서 데려가는 건 마찬 가지입니다.


사진도 찍어야 하고 짐은 무겁고 갑자기 따라나선 추격전은 싱겁게 끝이 났습니다. 멀리서 아이들이 뒤 쫒아가는 풍경을 담기에도 벅차기만 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골목은 다시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난 뒤에도 몇개쯤 골목을 넘어선 거리일 것 같은 곳에서부터 모기차의 굉음이 들려옵니다.. 다시 달려가 확인하고 싶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나이를 먹었나 봅니다..ㅎㅎ..

너무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라 나중에 여러가지로 궁금해서 보건소에 직접 전화를 걸어 봤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해결을 해야 하거든요..ㅎㅎ). 거리에서의 이러한 방역은 주로 모기와 파리를 막기 위해서인데요. 한여름이 되면 가끔 이렇게 방역을 하러 다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풍경도 아파트가 많이 들어선 요즘엔 보기가 힘이 듭니다. 대단위 아파트의 경우 별도의 방역 대책을 세우도록 되어 있어서 이런 모기차가 다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 같은 골목이 많은 곳에나 이렇게 뽀얀 구름을 만들며 다니는 것이죠.

일명 모기차 내지는 방구차라 불리는 연막 방역소독을 시작한 것은 대략 1960년대 말부터라고 합니다. 정확한 명칭은 연막 가열소독인데요. 살충제 원액에 경유나 석유를 섞어 일정온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원액이 점화되면서 연기모양으로 퍼져 나가는 원리를 이용하는 거라고 합니다.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소독한다는 장점과 상징성 때문에 수십년간 사용돼 왔지만, 공기오염과 인체 유해성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방역차에 쓰이는 살충제는 보통 1:200로 경유와 혼합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로 하루 종일 방역을 해도 사용하는 살충제의 양은 극히 적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살충 효과도 지극히 적습니다. 연막소독으로는 대부분 죽지 않고, 기절시키거나 행동을 둔화시키는 역할을 잠시 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모기차 방역을 하지 않으면 동네사람들의 민원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여름이니 어서 소독차를 보내서 연기좀 뿌리라는 요청이 많다고 합니다. 그 효과에 있어서는 의문이 많지만 주민들의 요청이니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까요. 아마도 연기가 퍼지는 만큼 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 일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어릴적 추억을 만나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해질무렵 동네 골목에 귀를 귀울여 보세요.
어릴 적 추억이 지나가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