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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키우기에 도시가 더 좋아요”


지구를 살리는 취미생활, 도시양봉 이야기 


벌을 키우고 꿀을 따는 양봉이라고 하면 흔히 시골집이나 산 중턱에 늘어선 벌통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도시 한가운데서 양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 하여 도시양봉이다. 아직은 많은 이들에게 낯선 풍경이지만 갈수록 참여인구가 급속히 늘고 있는 소위말해 요즘 뜨는 취미생활이다. 

구암동에 살고 있는 차상륜(47)씨도 3년째 집에서 꿀벌을 키우는 도시양봉가다. 집을 들어서면 마당 한쪽을 벌통이 점령하고 있다. 한통에 평균 1만 5천 마리에서 2만 마리가 살고 있으니 어림잡아도 10만 마리 이상의 벌을 거느린 대식구의 가장인 셈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한 통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5통을 키우고 있어요. 더 늘릴 수도 있지만 손이 많이 가다보니 직장 다니면서 그 이상은 무리가 있더라구요. 호기심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생활의 일부가 됐습니다. 신경 써줘야 하는게 많아 늘 바쁘지만 벌들을 보살피다 보면 재미도 있고 특히 꿀을 딸 때면 보람도 있죠.”


차씨는 양봉을 하기 전부터 텃밭도 가꾸고 있다. 인근에 500평 가량의 농지에 다양한 작물도 가꾸고 있는데 주말이면 주로 텃밭에 가있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도시농업과 도시양봉을 동시에 하고 있는 셈이다. 직장도 농협에 다니고 있는 그는 어릴 때부터 직접 무언가를 키우는데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텃밭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벌에도 관심이 가더라구요. 처음엔 좀 시행착오도 겪고 쉽지 않았지만 이젠 좀 익숙해졌어요. 다만 벌을 키우고 텃밭도 가꾸다 보니 주말도 없고 다른 취미생활은 엄두도 못 냅니다.”


특히 중년에 접어들면서 아이들도 웬만큼 자라 신경을 덜 쓰게 되고 본격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로 하다 보니 재미가 쏠쏠하다는 차씨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며 한번쯤 도전해보기를 권했다. 초보자들이 하기에 어려울 것 같다고 하니 직접 부딪혀 보면 다 할 수 있다며 처음 하는 분들에게는 노하우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양봉에는 도시가 더 적합해

언뜻 도시에서 양봉이 잘 될까 싶기도 한데 실제로는 농촌보다 도시가 양봉에 더 적당하다고 한다. 벌에게는 건조하고 따뜻한 기후가 좋은데 시골보다 도시가 더 맞춤한 것이다. 게다가 농업으로 인해 단일 작물이 많은 농촌에 비해 주변의 식물종이 다양해 먹이도 충분해서 도움이 된다고 한다. 도시에 꽃이 어디 있냐 싶을 수도 있지만 벌들의 활동반경이 대략 2km정도나 되서 문제가 없다고 한다. 오히려 벌을 키울 때 이웃에서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다. 


그렇다면 도시양봉을 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벌통을 놓고 키울 수 있는 공간이다. 마당이 있다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벌통을 비롯해 꿀을 내리는 장비까지 관련 물품이 제법 된다. 또한 벌을 키우는 과정에서 필요한 소모품들까지 포함하면 시작할 때 준비할 것들이 적지 않다. 물론 처음 시작하면 벌들도 분양을 받아와야 한다. 공간마련을 제외하고 대략 제반 비용이 전체적으로 약 200만원 가까지 든다고 한다. 벌통이 늘어나면 또 늘어나는 비용이 생긴다. 취미생활로 보기에 적지만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양봉이라는 특성상 꿀을 따면 이 비용이 상당부분 상쇄 된다고 한다. 

“처음엔 좀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물품은 장기적으로 사용이 가능하고 꿀을 따서 일부라도 팔게 되면 어느 정도 수입이 생기니 부담은 크게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실제로 1통의 벌통에서 대략 연간 17병 가량의 꿀을 딸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시세로 1병에 4만원 정도 된다고 하니 전부는 아니지만 소모품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적지 않은 비용이 상쇄되는 셈이다. 


마당에 있는 벌통을 열어 직접 보니 그야 말로 장관이었다. 말 그대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벌들이 모여 있었다. 처음 벌을 구경하고 싶다고 연락했을 때는 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했는데, 벌통의 벌들을 보여주면서 그의 표정이 더 밝아졌다. 자신만의 보물을 자랑하는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5통의 벌통마다 여왕벌도 한 마리씩 자리 잡고 있었다.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느라 벌들은 여름만큼이나 바쁜 모습이었다. 새롭게 벌집도 짓고 새끼도 낳느라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도시양봉이 대세, 벌들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도시양봉이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게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그 역사도 그리 길지는 않다. 하지만 이미 서울의 경우 도시양봉협동조합이 생겼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에서는 양봉체험장 설치가 붐이 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벌이 가지는 생태환경적 가치로 인해 지자체를 비롯해 많은 분야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외의 경우 6~7년 전부터 도시양봉 붐이 일고 있는데 런던의 경우 옥상양봉이 각광받으면서 3200개에 이르는 벌통이 있다고 한다. 뉴욕의 경우 생태적 가치가 인정되면서 도시에서 양봉을 금지 하고 있던 법까지 개정해 벌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벌을 흔히 환경지표 생물이라고 한다. 벌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이라야 사람도 잘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벌의 생태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우리나라 토종벌들의 90%가 괴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벌이 줄어들면서 각종 농작물의 수분이 이루어지지 않아 농업생산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벌은 제대로 잘 가꾸고 키워나가야 하는 운명 공동체인 것이다. 

집에 마당이 없거나 인근에서 공간을 마련하기 힘든 이들은 전문 양봉단지에 가서 분양을 받아서 체험해 볼 수도 있다. 대구의 경우 가까운 경산에 벌통을 분양해주는 곳이 있다. 일정 금액을 내고 분양을 받으면 시간 날 때 가서 체험과 관리를 해볼 수 있다. 일상적인 관리는 전문가가 도와준다. 물론 꿀도 딸 수 있다. 


벌 구경을 마치고 집안으로 따라 들어가니 주인장이 내주는 꿀을 맛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꿀맛이었다. 시중에 판매되는 꿀의 경우 병 때문에 항생제도 사용한다고 하는데 차씨는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그만큼 신경을 더 써줘야 한다. 안 그래도 요즘 식품안전에 대한 우려가 많은데 그만큼 더 믿을 수 있는 꿀인 것이다. 

다음번엔 텃밭에도 함께 동행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입가에 남은 꿀 향기를 맡으며 꼭 직접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