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기획연재] 마을공동체지역운동 이야기


※ 본 글은 '두레생활정치연구소' 소식지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블로그에 있는 다른 글과 어투와 형식이 다르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지역운동이 제기된 배경과 그 역사


 


87년, 사회운동의 빅뱅


사회운동의 많은 영역들이 그러하듯 지역운동이 제기되는 과정에서도 우선 87년 6월 항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호헌철폐, 군부독재 타도를 요구하던 거대한 민중의 물결은 단순히 대통령 직선제만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 다양한 영역에서의 운동 흐름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큰 비에 생겨난 물줄기가 땅으로 스미듯 87년을 통해 형성된 제도적 민주화의 흐름은 지역 구석구석으로도 퍼져나갔다. 그 전까지 맹아적 형태로 흩어져서 진행되던 각종 빈민활동, 진보적 선교활동 등 지역운동의 초기 형태들이 이때를 계기로 조금씩 지역적인 공동활동의 형태로 묶이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조직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지역운동은 다분히 저소득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이나 연대활동의 지역적 흐름에 머무른 경향이 많았고 아직은 지역주민들의 힘을 모아 지역을 바꾸는 목적의식성을 가지지는 못한 수준이었다. 또한 노동운동이 활성화 된 지역에 기반 하거나 특정 빈민활동 지역에 국한 되는 등 일반적 흐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지방자치제의 부활과 지역운동의 확대


이후 본격적인 지역운동의 개념이 성립되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다름 아닌 지방자치제의 부활이었다. 90년대 초반을 시작으로 98년부터 본격적으로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각 지역별로 지방권력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고 이는 자연스럽게 지역단위의 자치 흐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말하자면 흩어져 진행되던 초기 흐름들이 지방자치제도의 시행을 계기로 목적의식성이 생겨나고 하나의 흐름으로 집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당시만 해도 이런 흐름들이 적극적으로 지방자치권력에 대한 진출까지 염두에 두고 발달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97년 대선을 전후해 진보정당에 대한 흐름도 함께 형성되면서 이런 논의들도 아주 폭발적으로 확대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이시기를 전후해 전국 여러 지역에서 현재 지역운동이라 불리는 여러 활동들이 시작된 곳들이 많이 있다. 지역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공동육아 등 교육사업이나 문화동아리 활동, 지역현안에 대한 활동 등 산발적이지만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체가 된 다양한 실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들이 좀 더 빨리 성장한 곳들은 지역기반의 시민운동 조직이나 지역청년회 등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시기에 시작된 지역운동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조금씩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인천이나 울산 등 전통적인 노동운동이 강했던 지역들은 다양한 자치운동에 대한 참여와 이를 기반으로 지방권력 진출까지 시도하는 적극적 흐름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98년 지방선거에도 다수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으로 당선되는 성과를 만들기도 했다. 반면 강원도 원주나 대전 유성지역, 서울 성미산마을 등의 경우 정치적 흐름은 일정정도 배제한 채 비교적 규모는 작지만 협동조합 등의 방식을 중심으로 주민자치에 중점을 두고 성장하기도 했다. 물론 어느 지역이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측면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지방권력을 중심으로 한 차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615공동선언과 전략근거지 사업


이처럼 87년과 지방자치제의 부활을 통해 확대되기 시작한 지역운동은 2000년을 지나면서 또 한 번의 도약기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 남북의 정상이 만난 615공동선언이다. 현재는 연속되는 대선 실패와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통일운동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이 위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만 해도 615공동선언 이후와 이전을 중심으로 사회운동 전체의 흐름을 구분할 정도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역운동의 입장에서도 이런 흐름은 강하게 나타났다. 통일운동이 일반적으로 확대된 것은 당연하겠지만 보다 중요한 변화는 지역운동을 바라보는 진보진영의 시선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즉 통일운동 자체의 상황변화를 떠나 시대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좀 더 현실적인 영역으로 더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포함해 다양한 사회운동 진영이 지역을 통해 구체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구현하는 것을 활동의 목표 중 하나로 받아들이게 됐고 이는 수많은 지역에서 새로운 지역운동의 출발로 나타났다. 

여기에 또한 촉매제가 된 것이 2002년 말부터 이어진 여중생 촛불항쟁이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줄 알았던 대중의 역동성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수많은 지역에서 지역운동을 표방한 단체나 모임들이 생겨났다. 특히 앞서 이야기한 진보운동진영의 많은 활동가들이 지역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양적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 나온 개념 중의 하나가 바로 전략근거지이다. 이는 지역운동을 단순한 자생적, 지역적 과제의 해결로 보던 시각에서 좀 더 사회운동의 전략적 지점으로 사고를 전환하게 된 것이다. 기존에 생각해온 정부권력을 대상으로 한 운동의 흐름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주민들이 주체가 된 지역운동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경로 또한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해 좀 더 앞서 있던 특정 지역들을 중심으로 집중하자는 의미였다. 특히 이런 개념을 통해 지방선거는 물론 2004년 총선을 향한 목적의식적인 지역개척이라는 의미가 지역운동에서 주요 화두로 제기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정치권력에 대한 지향을 포함한 지역운동이 전부는 아니었다. 여전히 지역별로 주민들을 주체로 자생적으로 확대되던 다양한 지역운동 또한 여전히 그 힘을 키우고 앞선 지역의 사례들이 전파되면서 회자되는 기회도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지역운동을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흐름이 지역운동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 비약적인 성장의 동기가 된 것 만큼은 분명하다. 이런 흐름은 2004년 총선을 거치면서 또다시 여러 가지 측면으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는 이후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