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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목과 추억


어린시절 단칸방에 온식구가 세들어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3남매에 부모님까지 다섯식구가 옹기종기 모여서 살던 그 시절, 단층임에도 한집에 세가구가 모여살았으니 방크기도 그리 크지 않았었던 것 같습니다. 

세가구가 모두 공동으로 쓰던 푸세식화장실은 늘 밖으로 냄새가 퍼져나왔지만 그래도 마당엔 늘 꽃이 피어있고 나름 낭만이 가득했습니다. 언젠가 들쳐본 사진첩을 보니 창호지를 발랐던 창문은 어린 삼남매의 손길에 '전설의 고향'속 귀신집 마냥  너덜너덜하게 구멍 투성이였고 모두들 연탄을 때던 시절이라 늘 집앞엔 연탄재가 쌓여 있었죠.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건 그 집이 골목 제일 끝집이었다는 것입니다.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골목으로 들어와 한번 더 꺽어 들어와서 끝까지 오면 저희 집이 있었습니다. 말그대로 막다른 골목이었습니다. 

길이 끊겨있다보니 그 자체로 하나의 닫힌 공간이 완성됩니다. 집앞 골목은 그래서 늘 아이들의 놀이터였습니다. 막다른 벽은 때론 숨바꼭지 술래가 눈을 가리는 자리로, 소타기말타기라도 할라치면 당연히 술래의 등을 받치는 자리로, 아이들이 차는 공을 사람처럼 되받아주는 또한명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제 몫을 했습니다. 

골목은 또 폭이 매우 좁아서 여러명이 함께 어깨 맞대고 지나가기 어려웠습니다. 거기다 막다른 곳이었으니 골목안 어느 집하나 서로 얼굴 모르는 집이 없었습니다. 옆집에서 부부싸움이라도 할라치면 온 골목이 귀를 쫑긋했을 정도니 좋은일이든 나쁜일이든 모두의 관심사였습니다. 골목 그자체로 하나의 생활 공동체가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 뒤로 수없이 이사를 다녔것만 그 때 그 골목은 잊혀지지가 않네요. 



#2. 추억을 만들지 못하는 동네


몇해전 아파트로 이사를 왔습니다.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작은 아파트이기도 하고 평생 주택에서만 살아온터라 나름 기대를 가지고 큰 마음 먹고 옮겨왔습니다. 

이사온 다음날 주택살던 시절 하던데로 떡을 해가지고 일회용 접시에 담아 한집한집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전했습니다. 이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주변에 돌떡도 돌렸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영 어색합니다. 집집마다 하나같이 똑같이 생긴 철문이 열리고 일면식 없는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그때 뿐인 것 같더군요. 빼꼼히 누군가 싶어 쳐다보며 대면대면하는 사이 그 짧은 시간은 이웃과 얼굴트는 기회로 너무 부족했고, 2년 정도 지난 지금도 그 이후 이웃들의 얼굴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파트란게 이렇구나 싶더군요. 


이제 딸아이가 6살이 됐습니다. 과연 아이가 이 아파트에서 주변 이웃들 얼굴이나 알 기회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이래서야 제가 어린시절 기억하는 골목에서의 추억이 더이상은 딸아이에게는 그저 아버지의 추억담에서나 있는 이야기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들끼리 오손도손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네라는 공간이 좀더 추억을 만들어 간직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시간이 갈수록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요. 골목은 물론이고 동네, 마을이란 말도 이러다 잊혀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듭니다. 


물론 이런 변화도 작은 것에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웃들과 인사나눌 기회도 더 만들고 아파트의 이런저런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산다면 지금 보다는 나을테지요. 제가 하는 만큼 아이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열리게 되리라 싶습니다. 





#3. 골목이 아름다운 이유


언젠가 우연히 길을 가다 아주 좁은 골목안쪽에서 연세 지긋한 내외분이 일하시는 걸 본적이 있습니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폐지를 모으는 분들이셨습니다. 그날 모은 폐지를 정리하는 것 같았는데 좁은 골목과 두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습니다. 골목은 그 분들에게 하나의 작업실이며 안식처 같아 보였습니다.


골목은 그자체로 좁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차들이 다니기 힘들고 사람들도 여럿이 함께 지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골목은 그 좁은 공간을 통해 골목과 접한 양쪽의 서로 다른 공간들을 훨씬 밀착시키고 연결하는 새로운 공간이 됩니다. 좁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골목은 단절된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회적 공간을 제공합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요즘 늘 어딜가나 골목을 유심히 들여다 봅니다. 어디가나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시절이지만 생각보다 여전히 골목 풍경은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낮은 담벼락에다가 어느 하나 똑같이 생긴 집이 없이 다양한 모양새들, 색깔도 형태도 다른 대문들. 골목은 그 자체로 문화이며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4. 골목이 사라진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한때 뉴타운으로 대표되던 도심 재개발 사업이 끓어오르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100년씩 가는 집을 짓지는 못했으니 언젠가 그 모습들도 바껴야 할테지만, 그저 재개발에서 떨어지는 떡고물만 보고 실제로 서민들의 삶의 터전을 붕괴 시키고,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재개발은 철거를 통한 강제 이주에 다름아닙니다. 
골목에 대한 파괴는 이렇게 자연스런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강제로 한쪽 끝으로 몰고 가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삐까번쩍한 아파트를 올리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주거문화의 대안일까요. 


어쨌든 갈수록 이렇게 골목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골목이 사라지는 만큼 그 추억이 사라지고,  이웃과의 끈끈함이 사라지고 다양성을 담은 문화공간이 사라집니다. 

어린시절 제가 살았던 단칸방이 있던 그 집, 그 막다른 골목은 지금 여전할까요. 
더 늦기전에 그 추억속 골목길을 찾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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