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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보면 위기 때마다 수많은 장수와 왕들이 등장하지만 사실 정작 나라를 구했던 이들은 늘 이름없는 '민' 들이 아니었나 합니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 나라의 큰 난리가 있을 때마다 낫과 호미라도 들고 전장으로 나서서 이름없이 죽어간 이들 모두가 그런 농민, 빈민, 천민들이었죠. 역사책에 이름 한자 새겨지지 않았지만, 바로 역사의 주인공들은 이들 인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100여년전 구한말의 혼란기, 부정부패한 위정자들과 외세에 맞서 싸웠던 동학농민혁명은 우리 역사의 어느 순간보다 '민'들의 힘과 의지가 떨쳐진 순간이었습니다. '민'들의 역사가 천대 받았던 경우가 많은 것처럼, 전봉준으로 대표되는 당시 동학운동은 한때 폭동 쯤으로 묘사 되기도 했지만 요즘은 당당히 농민혁명으로 대접받고 있어 참 다행이기도 합니다. 

동학의 고장 정읍 답사기 #1


몇 달전 전봉준 장군에 대한 책(혁명을 준비했던 지식인 선비, 전봉준)을 새롭게 접하면서 꼭 한번쯤 그의 행적이 살아있는 지역에 꼭 한번 가봐야겠다 싶었는데요. 얼마전 지인 몇명과 함께 녹두장군의 숨결이 서린 정읍에 다녀왔습니다. 틈이 나는 대로 정읍 답사기를 정리해서 연재를 해볼까 하는데요. 오늘은 첫번째로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방문기입니다. 


전북 정읍지역은 그야말로 동학혁명의 자취가 곳곳에 서린 동학의 고장입니다. 1894년 당시 농민들이 첫 궐기하고 승리를 얻어낸 곳들이 모두 정읍 지역에 있다 시피하니까요. 보시는 사진도 당시 관군과의 전투에서 값진 승리를 이뤄냈던 황토현 전적지 입니다. 지금은 가서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언뜻 알아보기 어렵지만, 벌판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기념관은 황토현이 내다보이는 바로 옆에 위치하고있습니다. 옛초가지붕을 연상시키는 지붕이 독특한 건물이 너무 딱딱해 보이지 않아 좋더군요. 


입구 현판인데요. 농민운동이 아닌 동학농민혁명이라고 제대로 쓰여져 있습니다. 명칭이 중요하겠나 싶기도 하지만 일단은 이름에서 격이라는 것이 만들어 지니까요. 


기념관 입구 홀에는 이렇게 커다란 나무가 한그루 전시되 있습니다. 배경에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만, 동학이 처음 일어났던 고부의 말목장터 어귀에 상징처럼 우뚝서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봐온 감나무입니다. 2003년 태풍으로 인해 쓰러져 역사적 유물로 보관하고자 방부 처리하여 기념관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을 모으면서 이 감나무 아래로 모이자고 말들을 전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말목장터 감나무를 지나 들어가니 입구에 이렇게 당시의 지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다들 보시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동학농민혁명을 지도했던 지도자들의 모습입니다. 나란히 기념관에 온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념관은 수많은 유물과 안내판들이 설치 되어 있는데요. 특히 동학 관련 유물 말고도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도록 여러가지 시대적 정보들이 정리 되어 있습니다. 동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시 시대상황을 잘 알아야 하니까요. 


요즘은 역시 이렇게 미니어처로 꾸며놓은 전시관들이 많죠. 그냥 글과 사진보다 훨씬 실감나고 좋았습니다. 


평소 닭을 키우는데 사용하던 장태입니다. 대나무로 엮어서 속에 닭을 넣어 키웠다고 하는데요. 관군들과 싸울때는 이 장태가 총알을 막는 방어무기로 사용됐습니다. 안쪽 빈곳에 짚을 잔뜩 넣어 굴리면서 총알을 막았다는 군요. 


당시 양반들이 먹던 밥상과 농민들의 밥상을 재현해 놓은 모습입니다. 극과 극이죠.. ㅡㅡ;. 


기념관에는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다양한 서책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보시는건 1894년 당시 동학의 과정이 정리된 실기들입니다. 일종의 기록 문서죠. 


전봉준 녹두장군의 모습을 담은 판화입니다. 잘 아시는 녹두장군의 노래가 새겨져 있습니다.


농민군들이 야외 전투에서 깃발 꽂이로 사용하던 돌입니다. 


동학은 학문적 의미이기도 하지만 우선 하늘을 섬기는 종교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훗날 천도교로 이어지기도 했는데요. 동학교도들이 이용하던 종교서적들도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동학이 처음 일어났던 고부지역을 재현한 모형입니다. 앞쪽에 내장산이 보이구요. 최초 봉기 대상이었던 고부관아터가 가운데 위치하고 있습니다. 


입구에서도 미니어쳐를 보셨지만 이렇게 기념관안에는 다양한 형식으로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놓았더군요. 부조나, 위에서 발아래로 내려다보는 상황재현 코너는 참 독특했습니다. 


당시 농민군, 관군, 일본군, 청나라 군대까지 실물크기로 실감나게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총칼로 무장한 군이들과 달리 죽창을 들고 서있는 농민의 모습이 색다릅니다만, 표정만큼은 훨씬 장엄하고 위엄있어 보입니다. 


보시는 건 역시 실물크기의 인형인데요. 그냥 재현만 해놓은 것이 아니라, 잠시 기다리면 인형들이 움직이면서 서로 대화를 나눕니다. 전봉준 장군이 잡혀가서 취조 받는 장면을 실감나게 볼 수가 있습니다. 말할땐 입술도 움직이고 재밌더군요. 물론 일본군이나 양반은 참 못돼보였습니다. ㅎㅎ


마지막으로 전봉준 장군의 재판 판결문입니다. 1894년 봉기 이후 수많은 과정을 거쳐 결국 외적의 손에 동학농민혁명이 진압되고 나서 1895년 3월 최종 판결을 받고 작성된 판결문입니다. 이런 유물들을 보니 그냥 말과 글로 듣던 거보다 훨씬더 실감나게 느껴지더군요. 


포스팅에 담지 못한 것들이 많아 아쉽습니다. 정읍 동학답사의 첫번째로 방문한 동학농민기념관에는 소개드린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전시물과 각종 영상물이 있으니까요. 기회되시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우리 역사의 가장 중요한 페이지 중의 하나인 1894년을 제대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아이들의 현장교육으로도 그만입니다. 


정읍 답사는 계속 이어집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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