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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내랑 둘이서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습니다. 결혼하고 아직 아이가 어린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함께 극장에 가서 영화 한편 보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결혼하기 전이나, 애 낳기전 신혼 시절에는 정말 자주 갔었는데 말이죠. 이럴때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볼 수 있는 영화나 가족석이 있는 극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어쨌든 나선 걸음이라 일단 시간을 기준으로 상영작을 골랐습니다. 미리 정보가 있던 영화들은 시간이 안 맞아서 그나마 제목 정도 들어본 영화라 간략한 평점 정도만 확인하고 '줄리아의 눈'을 선택했는데요. 평소 그리 즐기지 않는 공포영화인데다가 낯선 스페인 영화라 그리 기대를 하지 않고 봤습니다. 

그런데 기대없이 본터라 더 그랬겠지만 상당히 괜찮은 영화더군요. 

줄리아의 눈 (※ 스포일러 없음.)  



우선 '줄리아의 눈'은 앞서 짚었듯이 스페인 영화입니다. 사실 헐리우드 영화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스페인 영화를 접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그래서인지 보는 내내 대사들이 영어가 아니라는 점이 생각보다 귀에 많이 느껴지더군요. 워낙 영어에 약한 저이지만 역시 우리 생활에서 영어가 좀더 익숙한 언어이긴 한가 봅니다. 
하지만 영화 속 흐름이나 배경은 특별히 스페인이 연상되지는 않았습니다. 좀 평범하다고 할까요. 어쨌든 좀더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문화적 흐름의 영화들이 많이 소개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줄리아의 눈
감독 기옘 모랄레스 (2010 / 스페인)
출연 벨렌 루에다,루이스 호마르,파블로 데르키
상세보기
 
줄거리나 영화의 상세 정보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만, 시력을 상실하게 되는 병을 가진 한 여성이, 같은 병을 가지고 있다가 목을 맨 쌍동이 언니의 행적을 추적하는 이야기입니다. 제목도 그렇지만 주된 모티브가 눈과 시력, 보이지 않는 범인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인 줄리아는 점점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되고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알게되는 사실들이 점점 그녀를 위험에 빠뜨리고 범인을 향해 가까이 가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이지 않는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 영화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잔인하지 않은, 하지만 무서운

흔히 스릴러나 공포영화하면 쓱싹쓱싹 썰고, 자르고 피튀기고...으으..생각만해도 끔찍한 장면들이 난무하는데요. 이 영화는 상영시간을 통틀어 잔인하다 싶은 장면은 두서너 장면에 불과합니다. 그 장면들마저도 굳이 잔인하게 표현하지도 않구요. 저도 포스팅한 적있는 '악마를 보았다' 가 떠오르는 군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ㅡ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한시도 관객을 편안하게 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시력 자체를 소재로 하면서 어둠을 활용해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여러 사물이나 인물들의 행동이 순간순간 전율을 만들어 냅니다. 거기에 보일듯 보이지 않는 범인과의 추적, 주변 인물들의 연이은 죽음까지 모든 사건이 상당한 긴장속에서 흘러갑니다. 잔인한 장면 없이도 분위기와 시각적 상상력만으로 관객들을 공포와 스릴의 세계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우리가 무서워 하는 건 주로 아무것도 없는 길가에 혼자 걸어가다 뒤에 오는 사람, 어두운 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상상, ..이런 것들이긴 하죠. ^^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줄리아의 눈' 의 영화속 주인공은 시력을 잃어가는 중년의 여성입니다. 하지만 이 여성은 시력을 잃어가면서 정작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됩니다. 언니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몰랐던 것들, 소중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인생을 돌아보게됩니다. 늘 함께 있던 남편의 숨겨진 진실, 쌍동이 언니의 숨겨진 이야기.. 

주요 흐름은 범인을 찾아가는 평범한 스릴러 물의 공식을 따라가지만 영화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주목받지 못한채 살아온 범인(좀더 나가면 스포일러가 될듯...ㅡㅡ;)과 대비되면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우리 삶을 함께 보자고 하는 것 처럼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좀더 스릴러에 충실했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긴 했습니다. 어설프게 행동하는 주인공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과 결말부분에서의 감정과잉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까지 합니다. 물론 보는 이들마다 느낌은 다르겠죠. 

하지만 당장 한두달 후 자신의 눈이 멀어버린다고 생각하면, 어떨른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지만 시력을 잃고도 엄연히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삶은 이어질테고 그 전후로 달라질 많은 것들에게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긴 했던 것 같습니다. 


몇가지 지적질

사족이지만 이 영화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비영어권 영화의 번역에 대한 부분입니다. 다른 리뷰에서도 지적 된 것 같던데요. 영화속 주인공은 엄밀히 말해 줄리아가 아닙니다. 알파벳을 문자로 쓰긴하지마 영화내내 주인공은 훌리아라고 불리거든요. 영화가 미국에 가서 재포장된 느낌이랄까요. 

또한 영화는 스릴러임에도 중간중간에 이해가 가지 않는 억지들이 좀 있습니다. 방금 수술한 환자가 굳이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혼자 집에 가서 쉬겠다는 것이나(눈까지 안보이는데 말이죠.)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이 하는 행동들도 이해가 안되더군요. 마치 흔히 얘기하듯 주인공은 꼭 혼자 있을때 귀신이나 범인이 등장한다는 식의 공식들처럼 말입니다. 왜 저럴까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영화에 대한 몰입은 점점 떨어지는 데 말이죠. 

어쨌든 잔인한 공포영화를 별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적당한 긴장감속에 보실수 있는 괜찮은 영화가 아닌가 합니다. 좀더 나른한 일상에서 자극이 필요하신 분들께..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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