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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추운 겨울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좀더 어릴땐 추위 따위에는 아랑곳 없이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녔던 것 같은데요. 찬바람을 맞으며 어디 나다닐 엄두가 나지 않는 요즘입니다. 

특히 잠시 바람이라도 쐬러 어디든 가면 그 지역 사찰이나 명승지는 꼭 돌아보고 오는 편인데요. 포스팅이 뜸했던 지난 가을부터 연말 즈음까지 다녀오긴 했는데 포스팅을 미뤄뒀던 몇 곳을 차례로 담아볼까 합니다. 

오늘 보실 곳은 경북 영천에 위치한 은해사입니다. 제가 사는 대구나 경북에서는 꽤 유명한 사찰입니다. 다녀온 저도 왜 유명한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만...ㅡㅡ; 어쨌든 눈으로 나마 나들이 한번 다녀오시죠. ^^. 


영천시내에서 서쪽으로 16Km정도 가면 은해사가 나타납니다. 팔공산 자락 기슭에 위치해 입구현판도 팔공산 은해사입니다. 
요즘 어딜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은해사는 이렇게 입구부터 삐까번쩍하게 차려져 있습니다. 절이라기보다 관광시설 같은 느낌이랄까요. 제 취향은 아닙니다만, 보시는 건물 맞은편에는 넓게 주차장도 갖춰져 있습니다. 매표소도 보시듯 자리잡고 있어서요. 입장료(어른2천원)도 내고 들어가야 합니다. 요즘 웬만한 사찰은 다 그렇습니다만, 부처님 뵈러 들르는데도 역시 입장료는 필요한가 봅니다. ㅡㅡ;. 

은해사 [銀海寺]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팔공산(八公山) 기슭에 있는 절.
은해사백흥암극락전 /은해사백흥암극락전(조선), 보물 제790호, 경북 ...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이다. 이 절은 809년(헌덕왕 1) 혜철국사(惠哲國師)가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하여 해안사(海眼寺)라고 불렀다. 그후 중건과 중창이 계속되었는데 1270년(원종 11) 홍진(弘眞)국사가 크게 확장하면서 대가람이 되었고, 1275년(충렬왕 1)에는 원참(元旵)이 중건했다. 1485년(성종 16)에는 죽청(竹淸)과 의찬(義贊)이 묘봉암(妙峰庵)을 중창하고, 1543년(중종 38)에는 보주(寶珠) 등이 중수했다. 1546년(명종 1)에는 천교(天敎)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 새로 절을 지었으며, 이때 인종의 태실(胎室)이 되면서 은해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1563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음해에 묘진대사(妙眞大師)가 중건했으며, 1667년(현종 8)에 백흥암과 명부전을 중수하는 등 계속 부분적인 불사(佛事)가 이루어졌다. 1689년(숙종 15)에 법영(法英)·의연(義演)·광심(廣心)이 중창하여 대가람이 되었다. 그러나 1847년(헌종 13) 은해사 창건 이래 가장 큰 불이 나서 모든 건물이 소실되자 팔봉(八峰) 등이 주관하여 중수를 시작했으며, 근대까지 계속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설선당·심검당·종루·보화루·독성각·요사채·승당 등 24동에 이르며, 말사 39개, 포교당 5개, 부속암자 8개를 두고 있는 대본사이다. 이 절과 부속암자에 있는 중요문화재로는 거조암영산전(居祖庵靈山殿:국보 제14호)·백흥암극락전수미단(百興庵極樂殿須彌壇:보물 제486호)·운부암청동보살좌상(雲浮庵靑銅菩薩坐像:보물 제514호)이 있고 기타 60여 점의 사중보물이 있다.

- 다음 백과사전 -

따로 은해사에 대한 설명은 없으니 궁금하신분은 위 소개글이나 검색사이트를 활용하시구요. ^^. 


제목에도 있듯이 은해사에 대한 가장 큰 인상은 바로 입구에서 사찰 시설이 있는 곳까지 이어진 진입로입니다. 진입로라고는 하지만 차들은 다른길로 다니기때문에 산책로라고 보시는게 더 맞을 듯 하네요.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시작되는 이 길은 입구에서 본 첫인상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몇장 건지진 못했지만 연신 셔터를 누르느라 바빴습니다. ^^


제가 갔던게 10월말이었으니 가을이 꽤 깊어갈 무렵인데요. 누가 뿌린 듯 깔린 듬성듬성 깔린 낙엽들이 더욱 운치 있었습니다. 


길 한쪽엔 이렇게 작은 개울도 만날 수가 있는데요. 한겨울인 지금 보기엔 좀 춥지만 제가 참 좋아하는 풍경입니다. 가라 앉은 잎사귀까지 훤히 보이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동네 분들로 보이는 아주머님들이 걸어오시는 모습이 참 좋아서 담아봤습니다. 저도 나이들면 저렇게 다녀야 겠구나 싶더군요. 관광객이 아닌 어우러진 모습으로 말이죠. 


반쯤 걸어가면 자연스레 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이 있습니다. 나무 두그루가 서로 연결된 모습인데요. 안내 팻말도 있어서 읽어보니 다름아닌 연리지였습니다. 


혹 모르는 분이 계실까봐 알려드리면 연리지는 서로 다른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닿아 하나의 나무처럼 연결되어 자라는 모습을 뜻합니다. 연결된 두 나무는 연리목이라고 하는데요. 보시는 은해사 연리지도 100여년 정도의 참나무와 느티나무가 연결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주 희귀한 경우라고 하는군요. 
예로부터 연리지는 연인간의 사랑, 부모에 대한 효성을 상징해 왔습니다. 서로 진정 하나가 되어버린 나무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한 마음을 가지게 되나 봅니다. 


본격적인 은해사로 들어가는 입구인 보화루입니다. 색감도 그렇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느낌인데요. 현판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글씨라고 합니다. 그렇게 알고 보니 좀 다르게 보이더라는..ㅡㅡ;. 역시 옛것들은 좀 알고 봐야한단 말입니다. 


입구를 지나치자마다 합장을 하는 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저 구경하러온 저였지만 이곳을 다니러온 많은 분들이 저렇게 각자의 기원과 마음을 담아서 오는 곳이겠구나 싶어서 마음 가짐을 다시 먹게 되더군요. 


절의 명성과 달리 경내는 차분한 느낌이었습니다. 역사가 오랜 사찰임에도 고루한 느낌은 별로 없었구요, 그렇다고 현대적인 화려한 건물도 별로 없어서 조금 황량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아마도 한쪽에 수리중인 건물이 있어서 더 그랬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은해사를 지키고 있는 300년된 향나무입니다. 


본당인 극락보전입니다. 원래는 대웅전이었고 현판도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였다고 합니다. 


극락보전앞에는 이렇게 다녀간 이들의 염원을 담은 새끼줄이 걸려 있었습니다. 정성스레 써서 매어 놓은 모습을 보니 또 한번 조심스러워졌습니다. 


항상 어느 사찰이든 가면 눈여겨 보는 곳이 바로 이 처마 끝자락입니다. 다른 곳보다 화려한 면은 없지만 뒤쪽 산의 숲과 잘 어울리더군요. 작은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은해사 구경 잘 하셨나요. 마침 곳곳에 공사중이라 놓친 풍경이 많은데요. 기회되면 다시 가보고 싶기도 합니다. 돌아나오는데 돌탑이 마중을 나와있네요. 그저 말없는 산과 산사를 대신해 인사해 주는 듯 합니다. 


입구까지 다시 걸어나오는데 청설모 한마리가 분주히 나무를 오르락내리락 거립니다. 요녀석 때문에 요즘 다람쥐가 살기 참 어렵다고 하긴 하던데요. 지들도 하나의 생명이니 다 먹고 살자는 것이겠거니 싶긴 합니다. 그래도 니 사촌들도 좀 챙겨주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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