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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묵혀둔 답사이야기를 전할까 하는데요. 지난 10월 가을이 무르익어가던 때 쯤 마침 기회가 되어 경남 하동에 다녀왔습니다. 조만간 역시 끄집어 내서 포스팅을 할 계획인 '하동 박경리의 토지길' 기행을 위해 간 걸음이었는데요. 오늘은 그 맛배기로 토지길 코스의 가운데쯤 위치한 조씨고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소설 토지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잘 알고들 계실거라 생각됩니다. 소설만이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터라 웬만해서는 아실 듯 한데요.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경남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 된 곳이 바로 '조씨고가'입니다. 

현재 하동의 주요 관광명소이기도한 최참판댁은 드라마 촬영시 지어진 세트장인데요. 최참판댁에서 마을 안쪽길을 따라 골짜기 안쪽으로 30분에서 한시간 정도 걸어 들어가면 조씨고가가 나타납니다. 


토지길 코스의 한가운데 쯤 위치한 조씨고가는 지나다가 언뜻 보아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고택입니다. 돌을 일일이 쌓아 그 사이로 흙을 매운 담장부터가 눈에 띄는데요. 


이렇게 입구 한쪽에는 조씨고가를 설명해주는 안내판도 모양새 좋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설명을 보시면 아실테지만 조선 개국공신 조준의 직계손인 조재희라는 사람이 지었는데요. 5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나라 역사의 풍파를 그대로 간직한 집입니다.  


집안에 들어서면 이렇게 집 전체가 우러러 보입니다. 건물에 드러서기전 잘 정돈된 정원이 손님을 먼저 맞이합니다.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서면 이렇게 연못이 하나 보입니다. 사진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대강 흙만 파놓은 여느 연못이 아니라 일일이 돌을 쌓아 수족관처럼 사각형의 잘짜여진 형태로 지어진 물놀이 시설같아 보였습니다. 물가에 앉으면 술잔이 절로 오가고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올 것 같은 운치가 살아 있습니다. 


정원을 지나면 본채로 들어서는데요. 사진에 담지는 못했는데 왼쪽편에는 창고나 여러가지용도로 쓰이는 건물이 하나 있구요. 오른쪽 가운데 위치한 이 건물이 바로 조씨고택의 메인 시설 되겠습니다. 


건물 앞에서 본 처마의 모습인데요. 역시 어딜가나 우리의 옛건축물들은 이 선이 너무나 아름답죠. 조씨고가의 건물들은 기둥들마저도 요즘 처럼 정형화되지 않은 옛모습 그대로라 더욱 정감이 갔습니다. 


건물 맞은편 정원쪽 담벼락앞에는 온갖 장독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뭐가 들었나 열어보고도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 이 장독들만 가지고 있어서 부자 같을 것 같네요. 


기단석이라고 하나요 건물아래를 받치고 있는 네모단 바위들 사이로 풀이 자라나 있습니다. 뭔가 궁금한게 있는 마냥 내다보는 아이들 같습니다. 


입구에서 지나온 정원과 함께 평사리 전체가 훤하게 내려다 보입니다. 조선시대 동네에서 가장 큰 대지주 였을 조씨고가 사람들이 이렇게 마을을 내려다 봤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백년을 이어온 고택인지라 언제 만들었을지 모를 굴뚝과 수백번은 새로 한지로 발라 다듬었을 방문, 언제부턴가 자리해서 지금도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수도꼭지들이 서로 어울려 그 긴 시간을 한데 묶어놓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자리에 있었는지 모를 벌통도 시간의 흐름에 아랑곳 없이 꿀벌들을 부리며 제 할일을 합니다. 그러고보니 벌통이 분주한걸보면 이곳에 사는 분이 계시겠다 싶었는데, 마침 할아버지 한분이 집에서 나와 낯선 이들을 맞아주십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다짜고짜 밤 바구니를 꺼내오시더니 통째로 선뜻 내주시며 까먹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일면식도 없는 이들간에 이야기꽃이 피어났습니다. 

이분이 바로 조씨고가의 자손이셨습니다. 이제 올해로 85세가 되셨을텐데요. 백발이 성성하긴 했지만 연세에 비해 너무 정정하시더군요. 자식들 출가해서 다 내보내고 지금은 혼자 이 고택을 지키며 지내고 계신다고 합니다. 바구니에 내오신 밤에서 느껴지듯 할아버지는 조씨고가를 찾는 이들과 이야기하는 걸 참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연신 차도 마시고 가라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전해주십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조씨고가에 박경리씨가 수차례 다녀가며 취재를 했다고 합니다. 건물만이 아니라 조씨 집안의 이야기가 소설에 많이 녹아들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할아버지의 설명이 일사 천리로 쏟아지더군요. 소설속 주인공인 길상이라는 이름의 친척도 있었고 조준구 같이 집안을 망친 사람도 있었다는군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실제로 만난적은 없지만 몇해전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며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는 광경이 상상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별안간 방안으로 들어가시더니 할아버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오래된 가요였는데요. 노래실력도 예사롭지 않으시더군요. ^^.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냥 노래를 흥얼거리는게 아니라 마이크까지 잡고 정식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할아버지의 방안에는 이렇게 노래방 장비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틈만 나면 늘 노래를 하신다고 하는데요. 역시 정정하신데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노래를 연달아 두곡하시고는 다시 대청마루로 나와 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이번에는 자식이야기 손자이야기에 방문객들의 성씨, 조상이야기까지 이야기꺼리들이 샘솟듯 넘쳐나시더군요. 이런게 경륜이겠죠. ^^. 
적적하실 일상에 이렇게 토지길을 경유하며 찾아오는 이들과 이야기 나누는게 낙이라고 하시던데요. 꼭 기억하셨다가 하동으로 여행가시는 분들은 한번 쯤 가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자 본격적인 토지길 이야기는 조만간 이어서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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