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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언론 보도를 통해 서울대에서 학과별 모집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미 대학을 졸업한지 한참이고 저희 집 공주님은 이제 경우 기어다니는 수준이라 대학입시까지 까마득하긴 하지만(^^) 뭔가 짚히는게 있어 관련 기사를 찾아보게 됐습니다.
지난 
21일 서울대에서 사회대, 자연대 등 7개 단과대학이 신입생 선발 전형방식을 학과별 모집으로 바꿔달라는 건의서를 최근 대학본부에 제출했다는 내용이더군요.
일부 단과대학에 따라서는 아직 완전한 학과별 모집으로의 완전 전환을 신청한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는 학과별 모집 체계로 바뀌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또한 올해 초에 이미 밝힌 대학도 있었지만 최근의 움직임에 발맞춰 건국대, 연세대, 고려대 등 다른 대학들의 학부제 폐지 움직임이 본격화 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대학의 이 같은 학부제 폐지 움직임은 학생 모집 단위 자율화 등을 골자로 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이 지난 1월 개정되면서 예고됐던 것이기도 합니다.

학과별 모집을 추진중인 서울대, 역시 서울대에서 해야 뉴스가 되는 우리나라...ㅡㅡ;.



사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이 단순히 대학 신입생 전형방법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동안의 역사적 과정을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학과제 모집으로의 전환은 그리 단순하기만한 사안이 아닙니다.

1995년 5.31일 교육개혁안이라는 것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이 입만 열었다 하면 세계화, 선진화를 외치던 시기였습니다. 5.31교육개혁안은 교육마저 시장의 입장에서 경쟁으로 내몰아 정보화, 세계화 하겠다는 것으로서 이른바 소비자 주권론이라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시장의 상품으로 보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교당국과 이를 이용하는 학생이라는 소비자로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95년 저는 대학2학년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학생운동이나 사회적인 활동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저였지만 온통 학교에서는 531교육개혁안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교육 소비자인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명목하에 현재의 신자유주의를 교육분야에서 일거에 자리잡게 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장차 국립대의 법인화라든가 등록금 인상, 대학 구성원내 경쟁 강화 등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얼마지나지 않아 교육개혁안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것이 바로 학부제입니다. 학부제 또한 당시 학내 사회에서 상당한 반발을 불러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재 학부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상당부분의 부작용들이 당시에 이미 지적 되 왔었습니다. 학생들을 학과에 관계없이 일정하게 묶어서 선발하고 기본적인 교양을 이수한 후 2학년이나 3학년이 되서야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96년을 시작으로 학부제 방식의 선발방식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지금은 일부 특수학과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대학들이 학부제 방식으로 학생을 선출하고 있습니다.

잠시 학부제의 장단점에 대해서 짚어 보면. 당시 학부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정부와 대학당국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1. 우수인재 조기 확보
2. 비인기 학과의 미달 방지
3. 공통 필수교양 이수를 통한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
4. 대규모 모집을 통한 입시 경쟁률 상승, 그로 인한 응시원서 수입 증가
5. 진로에 대한 준비기회 보장, 전공선택의 여유


아주 그럴듯한 논리기도 했고 실제로 신입생들에게 이런 기대감을 가지게 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전공 선택에 있어 실제 대학생활 이후 판단의 기회를 가지게 되는 매력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학부제는 출발에서 부터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선 여러 학과를 통합해 모집하면서 전공 선택의 기회가 넓어졌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전공과목을 공부할 시간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 점입니다. 2학년 또는 3학년에 가서야 전공과목을 듣게 되는 데 따라서 졸업까지 전공과목을 짧은 시간내에 이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이는 학습의 질적 하락을 가져오게 됩니다. 학과 측에서는 각종 필수 이수 전공과정을 줄이기도 했죠. 쉽게 말해 대학에서 어떤 학문을 전공한다는 의미가 상당부분 퇴색 된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문제점은 학부제와 함께 복수전공이 적극 권장되면서 더 심해지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전공을 이수 하는것이 가능하다는 광고에 입학한 학생들은 수준 낮은 교육과정을 이수하며 간판따기에 급급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고등학교 4학년이라는 지적처럼 제대로된 전공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도 학생들이 추후 전공선택에서의 우선권을 위해 또다른 입시에 내몰리게 되는 점입니다.
입시지옥의 문을 벗어나 대학에 들어왔지만 한정된 전공선택의 기회를 위해 다시금 경쟁에 내몰리고, 경쟁에서 뒤쳐지면 입학시에 현혹됐던 전공선택의 다양한 기회는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일부 인기학과 편중의 경쟁을 유발한 이런 학부제의 문제는 갈수록 기초 학문이 무너지는 현재의 세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국 학문마저 경쟁과 시장의 논리에 흔들리면서 당장 산업화되고 돈이되는 학문이 아니면 외면받는 풍토는 국가의 장기적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무엇보다 학부제는 대학을 새로운 입시, 취업학원화 하면서
공동체성을 무너뜨렸습니다.

이는 물론 학부제 만의 탓은 아닙니다.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고 대학졸업후에도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청년실업이 만연한 이태백 세상, 세상모두가 쉬지않고 달리기만 해야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어딘들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대학은 그 사회의 공동체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이름이 이미 무색해지고 무슨 사설학원처럼 치솟는 등록금에 인골탑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이 사회를 짊어지고 나갈 청년들이 새로운 학문과 사회를 배우는 대학이라는 공간은 학문 습득의 교육가치만으로 보기에 역사적 의미가 너무나 큽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마다 대학인들의 목소리로 때론 목숨으로 지켜냈던 저항의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 사회의 오늘은 없었을 것입니다.
가깝게는 선후배, 동기간의 관계와 우정속에서 배우는 사람관계에 대한 경험적 학습은 몇시간의 강의로 대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가치를 몇푼의 경제적 효과로  어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대학 신입생들이 도서관과 집만을 오가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 인간의 사회적 속성과 창조적 능력을 요구한다는 기업의 목소리에도 이미 대학은 취업학원화 된지 오래입니다.

하여간 5.31교육개혁안은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오히려 더 강화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교육마저 시장화 되고 학생들은 소비자가 되어 오늘의 대학은 수업을 파는 기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명박 정부는 이 5.31교육 개혁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에도 학부제는 조금씩 해체되고 있군요. 취임초기부터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의지의 연장선상으로 이해가 되긴 합니다만 부정적 제도였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제어되던 것들까지 다 무너지는 것 같아 새로운 우려가 생기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학부제는 이를 집행하는 학교당국의 누적된 평가에 의해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학부제가 적성에 따른 학과 선택권을 준다는 취지와는 달리 인기학과 진입을 위한 학생들의 과열 경쟁을 불러오는 등 사실상 부작용이 더 크다는 각 대학의 판단이 내려진 것이지요.
사실 학교당국의 입장에서도 이런 제도들이 확산시키게 된데는 관련 제도 도입에 따른 정부지원의 인센티브에 기인한 측면이 큽니다. 그동안 각종 정부지원을 기대하며 말도 안되는 과목끼리 통합해가며(예를 들어 독일어와 일본어 등 언어학과를 함께 통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ㅡㅡ;.) 학부제를 무리하게 시행한 대학도 많았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부작용을 예상하고도 시행해온 것이죠. 서울대만 하더라도 BK21등 굵직한 정부지원정책에 따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학부제를 도입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부제에 대한 기사를 보고 몇자 적는다는게 길어졌군요..^^..
짧은 지식, 희미한 기억이지만 새삼 학창시절 그 시작을 본 당사자로서 감회가 새로웠던 같습니다.

얼마전 학교를 찾았습니다. 작년 촛불시위과정에서 연행되 벌금200만원을 맞아버린 후배를 돕기위해 학생들이 마련한 조촐한 후원주점에 가기 위해서였는데요. 
학교가 예전같지 않다는 선배들의 푸념섞인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이 사회를 위해 대학과 대학인들이 가진 희망이 많음을 느끼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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