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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기 두번째 입니다. 앞으로도 시간나는데로 5~6번 정도 더 이어질 것 같네요. 많이 더운데요. 오늘은 특히 눈밭이 배경입니다. 시원한 여름 되시기바랍니다. 참고로 제주도 포스팅은 여행 시간순서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이어집니다. ^^

<관련 포스팅>
2010/06/21 -  제주도 여행기 #1 너븐숭이 4.3 유적지

대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이 채 안된거 같은데 제주도에 도착했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다녀온 패키지 여행이라 3박5일 일정상 첫날 도착이 저녁시간이었습니다. 숙소에 들어가 쉬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여행이었는데요. 벌써 하루가 지난 셈이군요.ㅡㅡ;.

제주도는 마치 겨울이 없을 것만 같은 남쪽 섬입니다만 제가 찾아간 3월초의 제주도는 전날 내린눈에 가려져 아직도 한겨울이었습니다. 처음 찾아갔던 신혼여행때도 겨울이었으니 진짜 제주도의 모습을 보려면 다음 기회엔 꼭 봄이나 여름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첫번째로 방문한 곳이 바로 제주 4.3 평화공원입니다. 앞선 포스팅에서 말씀드렸듯이 이번 여행이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탐방 기행이거든요. 그래서 제주도 4.3 항쟁과 관련된 장소 들을 여러군데 갔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주도 4.3 평화공원은 당시 사건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재조명 해놓은 곳인데요. 차례로 함께 보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날 눈이 많이 온 관계로 공원의 평소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요 시설물을 보는데는 큰 지장이 없어서 오히려 차분한 관람이 됐던것 같은데요. 보시는 건 공원 가운데 있는 조형물입니다. 원형의 큰 터 안쪽 가운데 설치되 있었는데요. 공원 전체적으로 보니 뭔가 번잡스럽지 않게 여유있는 배치를 한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조형물도 주변의 시설들과 넉넉한 거리를 두고 공원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원형 경기장같은 시설들의 가쪽에는 이렇게 커다란 비석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는 수많은 검은색의 돌들이 각각의 사람들 마냥 가운데를 향해 서있는 모습입니다. 다들 크기도 다양하구요. 그 속에 새겨진 이름이 정말 4.3 희생자들의 규모를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뒤쪽에 보이는 경기장 같은 건물이 다음번에 자세히 전해드리겠지만 4.3 평화 기념관입니다. 공원 야외에는 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설들과 당시 사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 있는 반면에 기념관에는 구체적인 당시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 잘 정리되 있습니다. 기념관 이야기는 다음번 포스팅으로 좀 미루도록 하구요. 위에서 보신 비석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보이는군요.


비석들의 행렬 가운데쯤 세워진 조형물입니다. 한눈에 보아도 수의를 새겨놓은 것 처럼 보입니다.


조형물에 대한 해설이 새겨진 안내판입니다.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요. 희생당한 넋들이 하늘로 잘 올라갈수 있도록 기원하는 조형 작품이라고 합니다. 다섯벌의 수의가 가신 분들의 귀천을 기원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조형물들 사이로 길이 나있었는데요. 다음 코스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올라가는데 한쪽 눈밭에 작은 발자국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지만 새들은 벌써 종종걸음으로 앞서 갔나 봅니다. 당시의 참혹한 현장에도 수많은 짐승들과 나무들이 지켜보고 있었을 테죠.


잠시 언덕길을 올라가 도착한 곳은 희생자들의 위패가 모셔진 위패봉안소입니다. 일단 들어가기전에 보시듯이 분향소가 마련되 있습니다. 입구에 세워진 아치형의 조형물이 오는 이들을 내려다 봅니다.


저희 일행들은 봉안소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한 참배를 올려습니다.


잘 꾸며진 분향소가 조금은 어색했는데요. 당연히 제대로 평가 받고 제대로 대접받아야 하는게 당연할 텐데요. 워낙 오랜시간이 걸려서인지. 새삼 격세지감이 느껴졌습니다.


내부에 들어서면 이렇게 널찍한 공간에 위패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유족회 안내자 분의 설명을 들으니 위패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시듯이 4.3사건은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의 희생자를 낸 정말 가슴아픈 역사입니다. 위패의 규모가 보자마자 가슴을 답답하게 하더군요. 동네별로 분류해 놓은 위패들은 그 수를 쉽게 셀수가 없었습니다.


안내판을 보니 이 곳에는 13,461기의 위패가 모셔져있다고 설명되있습니다. 대략 3만명의 희생자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곳에 모셔지지 못한 희생자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위패봉안소 입구에 세워져있는 글귀입니다. '제주 4.3사건 희생자 영위'라고 적혀 있습니다.


위 사진의 표석 뒤쪽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글귀처럼 이 곳이 세계평화의 발원지가 됐으면 싶었습니다.


봉안소를 나와 뒤쪽에 마련된 위령단으로 향했는데요. 가는 길에 한라산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 산은 늘 저렇게 제주도를 내려다 보고 있었겠죠. 48년 그때도 말이죠.


위패봉안소와 달리 위령단은 당시 희생자 만이 아니라 사건과 관련하여 유명을 달리한 많은 이들의 묘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4.3 사건 당시는 물론 비슷한 시기 전국에 많은 분들이 행방불명되거나 희생당했었는데요. 이름이나마 새겨 이렇게 위령단으로 꾸며 후대에 전하고자 하고 있었습니다.


한눈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수많은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제주4.3평화재단에서 만든 안내판인데요. 위패봉안소에서 보았듯이 이름을 알고 시신을 찾은 분들 말고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행방불명이라는 분류로 이곳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줄지어 어디론가 떠나는 이들 중 하나가 뒤를 돌아보는 모습입니다. 평화공원에는 이처럼 곳곳에 수많은 조형물이 4.3을 나름대로 표현해주고 있었습니다. 유족회 분들 말로는 처음 조성할때부터 신경을 써서 배치했다고 합니다.


위령단 중에는 영남지역 분들의 자리도 많아서 따로 이렇게 안내표석이 있었습니다. 1948년은 특히 해방직후 수많은 분들이 정의와 통일을 위해 목숨을 잃었던 우리 역사에서 참 중요한 한해였습니다.


이날 위령단 방문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게 있었는데요. 바로 합토식입니다. 저희들이 출발한 대구에서 흙을 담아와 제주도 영령들의 곁에 함께 합토 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고이고이 함에 담아 보자기에 싸서 가져온 흙입니다.



보자기를 풀고 꺼낸 흙항아리입니다.


비슷한 시기 대구에서 있었던 10월항쟁 희생자 가족분이 당시 돌아가신 아버님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고 계십니다. 듣는중에 절로 눈물이 글썽거려 지더군요.


참가자들 모두 엄숙하게 귀기울이고 있습니다.


벌써 6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요. 그나마 역사적 평가를 받은 지금, 그나마 평화공원도 생겼지만 유족들의 아픔은 쉽게 상상하기가 힘든 세월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날 안내를 맡아주신 유족회 대표분입니다. 저희들이 가는 곳마다 친절하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공원안에 있는 나무 한그루에 쓸쓸히 까마귀 한마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공원을 둘러보는데 마지막으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야외 조형물입니다. 정말 가슴아픈 한 사건을 형상화 한 작품이었는데요. 보시는 모습은 한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제목은 비설(飛雪)인데요. 4.3 사건당시 25세였던 변병생이라는 엄마와 두살배기 아이가 총에 목숨을 잃은 일을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아마도 4.3사건을 가장 간결하면서도 가장 강하게 전하는 조형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형물 '비설'은 보시듯 제주도 특유의 건축양식을 본따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데요. 담 한쪽에는 보시듯 제주도에서 불리던 자장가가 새겨져있습니다. 당시 총에 맞아 엄마와 함께 세상을 떠나야했던 아이의 영면을 위해 새겨졌다고 합니다.


당시 사건 현장에 있는 것처럼 저절로 엄숙해 지더군요.


제주도 4.3 평화공원은 상당히 규모도 있고 여러가지 이야기꺼리들이 많았습니다. 상징적인 조형 작품들이 실제 자료들보다 오히려 더 마음을 움직이더군요. 유족회 분들의 말씀처럼 다른 기념관들처럼 너무 욕심내서 이것저것 막 만들지 않아서 오히려 더 차분히 관람을 할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제주도 여행가시는 분들은 꼭 한번 들려보셨으면 좋겠다 싶네요. 다소 무거운 맘은 들겠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역사니까요. 특히 아이들에게는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제주도 4.3사건]

1948년 해방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 이승만의 단선을 반대하는 움직임을 중심으로 일어난 군경과 주민들과의 충돌과정에서 당시 권력자들이 무력을 동원해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주민들을 대량 학살했던 사건.
남로당 지시설 등 주민들 다수를 빨갱이로 몰아 무참히 살해했고 3만명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있음. 50년간 진상규명, 명예회복이 되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관련 법률이 제정되는 등 역사적으로 재조명 받고 있음.

☞ 상세참조 : 제주도4.3사건 진상규명및 명예회복위원회 http://www.jeju43.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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