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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막걸리 인기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막걸리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하고,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와인을 추월하는 매출을 올렸다는 소식도 들리는 걸 보면 그저 한 때의 유행만은 아닌가 봅니다.

저도 막걸리 참 좋아해서 자주 마시는 편인데요. 저희 동네만 해도 최근에 새로 생긴 막걸리 집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아 반가운 일이지만 아무래도 요즘 어려운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과 맞닿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합니다.

며칠전에도 예전에 자주가던 막걸리집을 찾았습니다. 한동안 들르지 못한 곳인데요. 옛 정취도 뭍어나고 아늑한 곳이라 종종 들렸었던 가게입니다. 


입구부터 왠지 정감이 가지 않나요 ^^. 가게 이름도 '옛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막걸리집이 너무 반듯반듯하고 세련되 보이면 막걸리도 제맛이 아닐테죠. 뭔가 벗겨진 듯한 창문 유리사이로 들여다 보이는 모습이 마치 추운겨울 서리낀 창문 같네요. 누가 가만히 얼굴을 대고 밖을 쳐다 볼 것만 같습니다.


문위엔 연통이 매달려 있습니다. 요즘 들어 다시 연탄 난로를 쓰는 곳이 많아져 꽤 자주 만나게 되는데요. 역시 서민들에게 기름보다는 연탄이 더 편한 상대니까요. 그런데 연통이 마치 탱크의 포신 같습니다. 가게 안에서 밖을 향해 한방 쏘려나 봅니다. ㅎㅎ. 


문을 열자마자 입구 한쪽에 정말 오랜만에 보는 LP레코드판이 보입니다. 어느 가수의 음반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요즘 들어 그 쓰임새가 줄고 있는 CD까지 아래쪽에 함께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언제 다시 턴테이블 위에 올려질런지 모르는 팔자로 그저 방문객들의 눈길만 끌고 있습니다. 


역시 막걸리는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마셔야 제맛입니다. 한잔씩 거푸 따르다보면 어느새 주전자가 가벼워지고, 약속이나 한 듯 손잡이를 들고는 주인 아저씨를 부르며 흔들어 댑니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주인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주전자를 채워줍니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 꼭 한마디를 보탭니다. 

"주전자가 너무 찌그러진거 아이가..쩝...이래서야 막걸리가 들어가봐야 얼마나 들어가겠노.."

그러고보니 주전자가 찌그러진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래도 정량은 채워주셨으리라 믿을 뿐입니다. 


왠지 막걸리잔으로는 스텐레스 밥공기가 어울리는데 말이죠. 여기는 동동주에 자주 쓰이는 옹기 잔을 주는 군요. 막걸리랑 동동주가 사촌간이니 뭐 좋습니다. 

몇잔을 들이키고 취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들고간 카메라를 들고 가게 이곳저곳을 살펴봅니다. 오랜만에 와서인지 조금은 변한 듯 해도 벽에 낙서며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소품들은 처음 본 것들이더라도 낯설기는 커녕 언제나 그자리에 있었던 것들 같습니다. 

그런데 한쪽 벽을 보는 순간 아차...싶었습니다. 예전에도 봤던 한 인물 사진 때문입니다. 사실은 오래전에도 여기 오면 늘 이 사진을 가지고 주인아저씨랑 이야기를 나눴었죠. 


바로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입니다. 예전에 한동안 주인 아저씨랑 입씨름을 한 바로는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옛생각도 나게하는 소품을 겸해서 걸어 뒀다고 하는데요. 무시하면 그만이라고는 해도 왠지 술맛을 떨어지게 합니다. 

사실 박통은 막걸리집이랑 악연입니다. 살아있을때 사이다를 탄 막걸리를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재직 당시 막걸리 반공법이란 신조어도 만들었죠. 안보이는데서는 나랏님 욕도 한다는데 평범한 서민들 누구나 그랬듯이 한잔 걸치고 푸념 삼아 대통령에게 한마디 했다고 반공법(지금의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감옥에 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름만 법이었지 사실 술한잔 취기에 내뱉은 말까지 감시했던걸 보면 그저 권력을 유지하는 전가의 보도 같은 것이었죠. 참 대단한 시절이었다 싶습니다. 
그러고보면 요즘이라고 덜하지도 않죠. 오히려 대놓고 쥐어짜기도 하고 대통령 욕하면 두고두고 보복을 당하는게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옆에는 박통과 육영수 여사가 함께 찍은 사진이 실린 달력도 있습니다. 이들이 떠난지 수십년이 흘렀지만 2010년 2월 바로 오늘에도 이들은 이렇게 세상에 자신들을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놀랄만한 일도 아닙니다. 요즘도 티비를 보면 저 사진속에나 있어야할 분이 그저 저들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권력을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말많은 정수회가 새 정수회란 이름으로 달력을 만들었나 봅니다. 달력에 새겨진 '내 생명 조국을 위해"라는 글귀가 속을 쓰리게 합니다. 군사독재도 조국과 나라를 위해서 했다는 그의 후계자들은 여전히 이땅에 떵떵거리고 잘고 있는 참 이상한 나라 내 조국입니다.


사진과 달력이 맘에 들지 않지만 또 아저씨와 입씨름은 하지 않기로 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찾은 가게에서 맛있는 막걸리를 먹는 흥을 깨고 싶진 않더군요.

다시 자리로 돌아오면서 보니 아까 입구에서 봤던 연통의 주인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느새 몸을 불사른 연탄재들도 언젠가 주인 아저씨가 치워줄때를 기다리며 난로불을 쬐고 있습니다. 들어갈때 때깔도 곱고 꽤 무거운데 다 타고난 연탄재는 거칠고 핼쓱한 모습입니다. 

예전에 자주 써먹던 안도현의 시에 나오는 문구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웠"는지 잠시 생각해보지만 역시 감흥이 예전같지 않습니다. ㅡㅡ;..역시 전 그리 감상적인 인간은 아닌가 봅니다. ^^

막걸리는 역시 다 마시고 나설때 속이 든든해서 더욱 좋습니다. 영양도 풍부하고 가격도 싸고 게다가 맛까지 좋으니 이런술이 또 있나 싶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막걸리 열풍이 좀 오래가서 동네에서 편하게 갈 수 있는 막걸리집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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