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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봉하마을을 찾아갔습니다. 처음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땐 사실 이렇게 찾아가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사는 대구시내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국화꽃 한송이 올리고 그를 기억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겠거니 했죠.
하지만 더 늦기 전에 한번 찾아가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역사의 흐름이 소용돌이치는 그 곳에서 애증이 함께한 그에게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봉하마을에 도착하려면 아직 제법 남아있었는데 길가엔 명복을 비는 현수막들이 즐비했습니다. 장례와 영결식이 모두 끝났지만 아직은 그를 보낼때가 아닌가 봅니다.

봉하마을로 가는 길 옆으로 넓게 자리한 논입니다. 때늦은 모내기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티비를 통해 봤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멀리 보이는 농부들의 모습들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그의 모습이 보일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모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봉하마을로 들어가는 저희들도 저렇게 줄지어 있었구요.


정오가 가까워오는 시간이었는데 눈에 띄게 봉하마을로 향하는 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물론 차들은 이미 거북이 걸음입니다.
그런데 참..어처구니 없었습니다. 저도 이 행렬에 끼여있었는데요. 이렇게 봉하마을까지 느릿느릿 기어간 차량 행렬들은 봉하마을에 당도하고도 주차할 곳이 없더군요. 물론 차를 가져오지 않고 걸어가는 게 여러사람들을 불편하지 않게하는 방법이겠지만 줄지어선 차량 행렬을 따라온 타지인들은 허탈하기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결국 봉하마을을 스쳐 다시 마을 밖으로 줄지어 나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 행렬곳곳에 경찰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느누구도 차량이용에 대해 안내하거나 주차시설에 대해 설명하기는 커녕 줄줄이 들어가 고생해봐라는 식으로 구경만 하고 있더군요. 그럴꺼면 뭐하러 곳곳에 배치되 있는 건지 원...마을 진입로 이전에 미리 주차시설고 내부 사정에 대해 안내하거나 차량을 돌려세워야 하지 않았을까요. 결국 저희 일행은 한시간이나 차안에서 거북이 걸음으로 봉하마을을 지나쳐 펼쳐진 논 건너편 길을 따라 봉하마을 진입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참..지치더군요.
결국 그제서야 차를 한참 먼 공단부근에 주차하고 걸어들어갔습니다. 물론 여전히 주차할 곳 없는 봉하마을을 향하는 차량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구요.


봉하마을 주민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입니다. 길을 따라 수많은 현수막이 있었지만 가장 맘에 쓰이던 글귀였습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조문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 노인, 아이, 주부, 학생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를 애도합니다. 이 순간 모두 같은 마음일테죠.


멀리 사저가 보입니다. 티비에서만 보던 것과는 느낌이 또 다르더군요. 공사 팬스 때문인지 . 자신을 꽁꽁 숨겨두고 싶은 것처럼 보이더군요.


멀리서 바라본 부엉이 바위입니다. 실제로 보니 정말 아찔하더군요. 오래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오르던 산길을 올라갑니다. 산이 북적댑니다. 저는 돌아섰습니다.


노란 만장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조금은 외로워보이지만 웬지 꿋꿋해 보입니다.


사람들이 점점 불어납니다. 나중에 들으니 이날 봉하마을을 찾은 이들이 10만이라는 군요.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꾸며놓은 공간입니다. 젊은 시절 사진, 한창 피끓는 정치 초년생시절, 대통령 재임기간동안의 사진들이 다시금 그를 기억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라크 파병군인복장을 한 그와 10.4 선언을 하던,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나란이 있으니 맘이 복잡해 지더군요. 역시 여전히 전 노 전대통령의 모든 모습을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방문자들의 편지가 겹겹이 쌓입니다. 무엇인가 할 말이 있을 줄 알았는데 남기지 못하고 왔습니다. 누군가 십자수로 수놓아 만든 액자가 보입니다. 그냥 돌아서는 저에게 무언가 말을 할 것만 같군요.


마지막으로 마을을 나서려는데 어느 집 처마밑에 새들이 둥지를 틀었더군요. 무선인터넷을 위한 장비와 이것저것 주워모아 정성스레 만든 둥지가 참 잘어울리더군요. 이 시대와 봉하마을 처럼요.


앞으로도 최소한 49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찾을 텐데요. 오늘 같은 어이없는 불편함은 없도록 경찰당국이 신경을 많이 써야 하겠습니다. 장례는 끝났으니 이제 면피만 하겠다는 걸까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