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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 대구의 정체성 담긴 축제 만들자”


‘시민이 만들어가는 대구 축제’ 주제로 올해 첫 대구시민원탁회의 열려


저녁 7시, 직장인들은 퇴근하고 약속시간에 맞추기 빠듯한 시간이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 터였다. 그럼에도 넓은 강당에 마련된 원형 테이블 50개는 대부분 제시간에 맞춰 자리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1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대구시민 수백 명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한다는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이야기하던 군부독재 시절은 아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수고스러움과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난 11일, 그렇게 올해 첫 대구시민원탁회의가 용산동 대구학생문화센터에서 개최됐다. 대구광역시가 주최하고 대구경북연구원이 주관한 이날 토론회에는 참가신청을 한 대구시민을 비롯해 각종 축제 종사자 등 4백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의 주제는 대구의 축제였다. 본 기자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원탁회의에 참석했다. 

대구에는 현재 45개나 되는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고 있다. 대구시만 하더라도 매년 컬러풀페스티벌을 비롯해 DIMP, 국제오페라축제, 치맥페스티벌 등 12개가 개최하고 있으며 각 지자체 별로도 많은 축제가 벌어지지만 각각의 축제가 비슷비슷하고 특색도 부족하며 참여도도 낮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이날 토론은 대구의 축제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하나는 시민참여와 운영 방식 등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한 토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표 컨텐츠에 대한 토론이었다. 

우선 첫 번째 토론에서 참가자들은 대구 축제에 대해 기획력의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별 차이 없는 프로그램, 대구의 특색이 담기지 않은 내용, 지나친 상업성, 체험프로그램 부실 등이 지적됐다. 다음으로는 소수 중심의 축제가 가장 많은 공통의견으로 나타났는데 시민들이 빠진 축제, 기획사 중심의 기획, 여유가 없고 무관심한 시민 등이 구체적인 문제로 짚어졌다. 

두 번째 토론에서는 대구 대표 컨텐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출됐는데 그 중에서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축제, 대구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컨텐츠 발굴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 밖에도 각종 먹거리 축제, 폭염 축제 등도 많은 참가자들이 함께 제출하기도 했다. 


원탁회의는 대규모 인원이 한자리에서 모여 토론하는 방식의 하나다.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까지 참여해서 진행하게 된다. 10여명이 앉는 원탁이 다수 배치되고 각 원탁에 모인 사람들끼리 각자의 의견을 차례로 풀어내고 이를 IT기술을 활용한 장비로 실시간으로 모으게 된다. 이렇게 모아진 의견들이 몇 가지 주제로 압축되면 실시간 투표를 통해 전체적인 의견 흐름을 확인한다. 또 이어지는 상호토론을 통해 이런 의견들은 재차 정제과정을 거치고 전체적으로 제시된 주제에 대해 대규모의 인원이 합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대구시가 마련한 원탁회의는 이번이 두 번째다. 작년 9월 안전을 주제로 첫 번째 원탁회의가 열린 바 있다. 당시에는 대구시가 직접 주최하지는 않았다. 권영진 시장의 공약사업이긴 했지만 민간 위주로 구성된 100인 위원회에서 주도했다. 그래서인지 대구시가 직접 추진한 이번 원탁회의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우선 식전 행사가 달라졌다. 각급 선출직 공무원부터 원탁회의 운영위원 등 내빈으로 소개된 이들만 수십 명이었다. 지난해 원탁회의에도 의전 행사가 없지 않았지만 이렇게 길고 지루하지는 않았던 듯 했다. 특히 지난해 원탁회의 진행 당시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한다며 추진을 반대한 이동희 대구시의회 의장이 인사말을 했는데 물론 그런 언급은 없었다.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에 대한 지금의 입장이 궁금하기도 했다. 

또한 참가자 모집도 분위기가 달랐다. 대구시는 당초 올해 초부터 참가단 천명을 모집하고 이중 5백 명을 선정해 1회 원탁회의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모집 과정이 원활하지 못했고 최근인 지난달 말까지도 참가자 모집을 계속했다. 당일에도 현장에서 접수를 받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날 자리에는 곳곳에 빈자리가 많이 보였고 투표과정에서 확인한 참가자 수는 4백명이 채 못되는 수였다. 지난 첫 번째 원탁회의는 참가자 모집 초기부터 많은 관심 속에 일찌감치 마감된 바 있다. 이는 홍보부족에 기인한 영향도 있겠지만 행사 전반을 준비하는 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은 상황이다. 


더욱이 주제선정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축제라는 주제가 지역경제나 문화적 측면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대구의 산적한 각종 현안과 정책 중 다소 무난하면서 쟁점을 비켜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획됐으나 무산된 청년 관련 주제만 하더라도 대구가 갈수록 고령화가 심각해지고 청년세대의 타 지역 유출이 심각한 상황에서 보다 시급한 토론이 필요한 주제아니냐는 것이다. 참가자 모집 또한 이런 주제의 어정쩡함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날 권영진 대구시장은 원탁회의를 마무리하는 순서를 통해 “시민들이 이야기한 대구의 정체성이 담기고 다수가 함께 할 수 있는 축제를 위해 더 노력하겠다. 오늘 나온 의견들을 현실로 담아내기 위해 애쓰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도 더 나서야 한다. 관은 좀 더 내려놓고 민간과 시민단체들이 좀 더 힘을 모야 줘야 한다. 하루아침에 되지 않겠지만 시간과 정성을 다해 바꿔 가겠다.”라고 이날 원탁회의 전체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이날 참가자 중 한사람인 박연성(44, 달서구)씨는 축제관련 일을 하는 종사자의 입장에서 이번 원탁회의에 참여했다. 박 씨는 무대 조명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다. 업무 특성으로 회사를 통해 참가를 제안 받았다는 그는 “대구의 축제관련 경기가 매우 좋지 않다. 일거리가 많지 않아 생계에 지장을 느끼는 종사자들도 많다. 이번 기회에 좋은 의견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라며 소감을 밝혔다. 또 덧붙여 “시민들에게 의견을 묻고 이를 반영한다는 취지는 참 좋은 것 같다. 하지만 대다수 참가자들이 축제에 대해 전문적이지 못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 깜냥 껏 의견을 내다보니 효율성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며 기대와 아쉬움을 함께 전하기도 했다. 

토론이 진행되는 각 테이블 마다 발언을 정리하고 토론을 진행하는 퍼실리테이터로 이날 원탁회의에 참여한 손혜영(24, 수성구)씨는 영남대 재학 중인 학생이다. 모든 토론이 끝난 후 그는  “학교에서 퍼실리테이터 과정을 이수하던 중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참여하게 됐다. 준비를 위해 어제 별도의 워크샵도 했지만 긴장도 되고 진행에 부담이 많았다. 그래도 참여한 것 자체가 뿌듯했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참여해서 좀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대구시는 이번에 개최한 대구시민원탁회의를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주제로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원탁회의 개최를 ‘훈령’으로 정했으며 1회성 행사가 아닌 대구시정의 주요 정책 방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최소 분기에 1회 이상 열 계획이며 회의를 진행한 후에는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별도의 세부 실행계획을 수립해 시행할 예정이다. 



※ 본 포스팅은 강북인터넷뉴스(kbinews.com)에 함께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