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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를 아시나요? 


추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누구나 지난 기억들 중 아련하고 애틋한 시간들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린시절의 인상적이었던 기억이기도 하고 어쩌면 풋풋한 첫사랑과의 행복했던 순간이기도 할테죠. 


지금은 잊혀진 단어이지만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30대인 저도 겪은 시절이니 그리 오래전도 아니죠. 요즘도 무심코 말하면 초등학교대신 국민학교라고 말하게 되더군요. 일제시대의 황국신민에서 유래된 말이라 청산 차원에서 변경됐으니 잘된 일입니다만 추억의 단어이기도 합니다. 제 어린시절이 함께 거기에 있으니 말이죠. 




그러고보면 교련도 그런 기억들 중 하나입니다. 이른바 기초적인 군사훈련을 고등학교에서도  과목으로 채택해 하던 것이 바로 교련수업인데요. 얼룩무늬 옷을 갖춰입고 나무로 깍은 총을 들고 제식훈련까지 했으니 요즘 같아선 웃음부터 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련 시간에 옷 안 챙겨와서 욕먹던 기억이...ㅎㅎ. 



사람은 누구나 좋지 않은 기억보다는 행복했던 순간들을 중심으로 과거를 기억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사회의 역사에서도 어두운 순간들이 참 많습니다. 앞서 언급한 국민학교와 교련도 그 자체로는 개인사에서 추억이기도 합니다만 시대적으로 보면 어두운 구석을 함께 드러내고 있기도 합니다.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벌써 한달정도 지났습니다만, 대구에 마침 기다렸던 사진전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진전이라기보다 전시회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바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열고 있는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입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가장 어두운 시절이라 할 수 있는 유신시대를 여러가지 자료를 통해 돌아보는 전시회입니다. 대구 전시는 지난달에 끝났습니다만 전국을 순회하고 있으니 지금은 어디 다른 지방에서 하고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전시할때는 실내 전시공간을 대여해서 했다고 하는데, 대구는 전시관을 못잡아 야외 공원에서 전시했습니다. 보수의 도시 대구에서 장소 잡기가 어려웠던 건 아닐까 짐작을 해봅니다. 아니면 말고..ㅎㅎ



정확한 명칭은 자료와 별개로 '유신 40년, 특별 사진전 "유신과 인혁당"' 이었습니다. 차일 피일 미루다 이제야 포스팅을 하게됐네요. 대선기간에 올리려고 하던 의도는 전혀 ....있음을 밝혀둡니다. 쿨럭. 



평일 낮시간이라 지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다만 지나시는 분들 누구나 유심히 전시물들을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우선 전시회에서는 유신의 유래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짚어갑니다. 알려진바와 같이 박정희는 일본 관동군 장교 출신이죠. 최후의 일본제국 군인으로 불렸던 그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 등에 대해 칭송했었고 이런 사상적 토대에서 유신헌법이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박정희 시절 가장 대표적인 정부주도 사업이 바로 새마을 운동이죠. 지금 돌아보면 우리 사회의 원조 뉴타운이라 할 만합니다. 일각에선 이를 박정희 정부의 최대 업적으로 자랑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이 기간동안 우리 농촌은 완전히 유린당하고 상당수의 농업인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도심 하층민을 구성하게 됐습니다. 전시물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수치까지 곁들여 잘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농촌을 새마을로 만든다면서 정작 사람은 농촌에서 몰아내고는 이들을 산업화 과정에서 아주 저렴한 노동력으로 착취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벌어진 노동탄압을 이야기하면, 유신시대 당시 가장 대표적으로 전태일 열사가 있습니다. 산업역군이라는 명목아래 고등학생들까지도 최소한의 노동권도 보장 받지 못한채 장시간 저임금 노동력에 시달려야 했고, 이런 희생아래서 박정희시대의 경제발전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글 머리에도 언급했듯이 교련과 국민학교가 대표적인 이 시절 사회의 한 단면입니다. 일제시대의 국가관을 그대로 가져오고 학교마저 병영화하는 모습은 다분히 일본군 장교 박정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 근거로 사용된 각종 식민악법들은 유신시대를 전후해 현대화되어 민주화 운동가들을 탄압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중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그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요즘이야 남자든 여자든 복장이나 헤어스타일로 단속에 걸리는 일이 없습니다만 저 시절엔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단속까지 했었다니 참 격세지감입니다. 나라가 여성들의 치마길이까지 간섭하다니 .. 그 발상이 대단하죠. 



이것이 그 유명한 박정희의 특별담화문입니다. 이때를 시작으로 유신헌법과 각종 긴급조치들이 시작됐고 우리나라 현대사에서도 유래없는 암흑의 시대가 펼쳐지게 됩니다. 



유신헌법을 시작으로 그에 반하는 행동이나 말하나도 모두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막걸리 반공법이라해서 술자리에서 말한마디 잘못했다가 잡혀갔다던 시절도 이때입니다. 그야말로 양심수가 양산되고 감옥에 빈자리가 없을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숫자로 본 박정희 시대입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수 있을텐데요. 대표적으로 몇가지 보면, 지지율 99.9%, 생산직 월 노동시간 260시간, 말한마디에 철창행 12년...등 하나하나 기가찬 이야기들입니다. 



최근 언론에서도 새롭게 회자 됐습니다만 이러한 유신시대의 종말을 알리던 시작이 바로 부마항쟁입니다. 당시 부산대를 중심으로 시위가 확산됐고 박정희는 이를 폭력으로 진압하려고 합니다. 당시 박정희와 차지철이 나누던 대화가 유명하죠. 


차지철 : "캄보디아는 300만이나 죽였는데, 우리는 100~200만 희생시키는 것이 별 문제겠습니까?"

박정희 : "사태 수습이 늦어지면 내가 직접 발포를 명령하겠다."



여기서 잠깐 광고군요..^^. 아시듯 민족문제 연구소에서는 몇해전 오랜산고끝에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바 있는데요. 이를 시대에 맞춰 모바일 버전으로 출시 했더군요. 사실 책값이 만만치않아서 저도 구입은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디지털화 해서 나오니 참 세상이 달라지긴 했나 봅니다. ^^



유신시대 대표적인 사건하면 뭐니뭐니해도 인혁당 사건이죠. 두어달 전인가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두 개의 판결이 있다면서 그 역사성을 왜곡해서 질타를 받기도 했는데요. 세계 사법역사상으로도 유래없는 어둠의 날로 기록되고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건 자체를 모두 언급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말해 유신에 반대하는 주요 민주화투쟁 인사들을 고문과 조작으로 하루아침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든 천인공노할 권력형 범죄입니다. 사법살인이라고도 하죠. 개인적으로 제가 다닌 대학 선배한분이 이때 돌아가셨고 학창시절 이 선배 추모제를 하는 것 만으로도 정부로부터 탄압이 있을 정도였으니 오랜 역사에 비해 불과 십수년 전까지도 제대로 진상조차 규명받지 못하던 사건이기도 합니다. 



당시 인혁당 사건의 정신을 잘 밝혀주고 있는 반독재구국선언문입니다. 



인혁당 사건은 사건 내용도 문제이지만 이렇게 각종 고문과 조작으로 사건 자체를 왜곡하고 피해자들의 인권을 말살한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끓어오르던 유신반대의 기운을 시범케이스로 씨를 말리려 한 것이죠. 



마침 당시 돌아가신 분들 중 상당수가 대구 연고자 분들입니다. 이렇게 야외에서 전시된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하네요. 정말이지 제가 대학다니던 시절에만 해도 이분들 영정 모시고 제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경찰들이 출동했으니...참 기가 막힙니다. 



이분이 바로 제 학교 선배님이자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학생회장이라는 이유로 인혁당이라는 이름으로 목숨을 빼앗긴 여정남 열사입니다. 


이렇듯 유신시대 대표적 고문조작 사건인 인혁당 사건은 사건이 일어난지 30년이 넘어 2007년이 되어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박근혜 후보는 두 개의 판결이 있다며 이런 역사적 평가를 되돌리려고 했죠. 이는 이분들을 두번 죽이는 일과 다름이 없습니다. 



전시회를 다 돌아보고 나오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커플이 관람을 하고 있더군요. 저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렇게 우리 세대가 조금은 자유롭게 스스로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하며 살 수 있는 것도 유신시절 목숨까지 잃어가며 싸운 분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 갖 5살 된 딸아이를 둔 아빠로서 훗날 저도 다음 세대를 위해 오늘 이렇게 살았노라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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