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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스스로도 느끼는 거지만 그림이든 음악이든 예술영역에 대해 좀 무식한 편입니다. 전공도 공학쪽이고 워낙 어릴때부터 뭐든 만들고 직접하는 건 좋아해도 미술관 한번, 좋은 공연한번 제대로 본적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공익광고였던가요 "좋은 공연의 감동은 평생을 갑니다"라고 하더군요. 저에겐 참 아쉬운 이야기입니다. (ㅡㅡa)...

자라면서 세상이 좀 좋아졌다고 해야할까요 나름 인터넷이나 책으로 접하기도 하면서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진것 같긴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느정도 굳어진 이런 성향이 쉽사리 바뀌지가 않는군요. 그러고 보면 살면서 특히 남들 다 아는 클래식음악이나 유명 미술품에 대해 잘 몰라 좀 부끄러운 적도 많았습니다. ^^

어쨌든 오늘도 서론이 길었습니다만..ㅎㅎ. 이런 제가 며칠전 볼일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어느 건물 로비에서 예사롭지 않은 전시물을 만났습니다.


대구은행 본점 건물 로비였는데요. 번쩍 거리는 모니터 화면과 모양새만 봐도 얼른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백남준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티비에서나 사진으로는 많이 접해본적이 있었습니다만 직접 이런 작품을 본건 처음이었습니다. 그저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보면 볼수록 느낌이 색다르더군요.


정면에서 본 모습인데요. 전체적으로 마치 악기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악기의 몸체가 되는 부분을 구성하는 모니터는 모두 6개가 있었는데요. 2가지의 영상이 각각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한쪽 구석을 보니 이렇게 작품 설명이 있더군요.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난 그의 이름과 함께 작품 제목이 'TV Cello'라고 돼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연상되는 악기는 바로 첼로였던 겁니다.

백남준


1932년 7월20일 경성부에서 5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명한 자본가인 백낙승이다.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서양 고전 음악 피아니스트로 교육받았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백남준과 가족은 한국을 떠나 홍콩으로 갔다. 그 후 일본으로 가, 도쿄 대학 문과부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미술사와 음악사를 공부하였다. 졸업 논문으로 아르놀트 쇤베르크에 관한 글을 작성한다.

졸업 후 백남준은 독일로 건너가 뮌헨 대학교에서 다시 음악사를 공부하였다. 그곳에서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볼프 보스텔을 만나면서 백남준은 전자 예술로 방향을 틀었다. 스톡하우젠과 케이지와 함께 전자 음악에 관한 작업을 하였다.

케이지에 영감을 받은 백남준은 일상의 소리와 소음을 사용하여 음악을 만드는 등, 플럭서스와 같은 네오 다다 미술 운동에 동참하였다. 이 즈음 자기 공연에 찾아온 스승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 버리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얼마 뒤 백남준의 피아노 전시회에 케이지가 찾아와 피아노를 때려부수는 퍼포먼스를 해서 복수했다는 일화도 있다. “음악-일레트로닉 텔레비전의 폭발”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어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이 전시회에서 그는 텔레비전과 자석을 이용하여 왜곡된 화면을 만들어냈다.

1964년 백남준은 뉴욕으로 이동하여, 서양 고전 음악 첼로 연주자 샬롯 무어만과 함께 비디오와 음악을 혼합한 퍼포먼스의 작업에 착수했다.

낡은 전자제품으로 작품을 꾸미는 것을 즐겨했다.

2006년 1월 29일, 미국 마이애미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으며 유해는 서울, 뉴욕, 독일에 나눠서 안치되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알게된 사실이지만 1991년작인 이 "TV Cello"는 백남준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합니다.
백남준에 대해 좀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의 예술적 분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샤롯 무어맨이라는 첼리스트가 있었다고 합니다. ‘TV Cello’는 그의 연주 모습과 서울올림픽 경기, 전쟁 장면 등이 담긴 비디오 영상물이 첼로의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인데요. 무어맨이 12년간 암투병 끝에 숨진 1991년 제작됐다고 합니다. 
실제 무어맨은 백남준의 허리를 첼로로 삼아 행위예술을 벌이면서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 뉴욕타임즈에 9번이나 게재될 정도로 그와 함께 예술작업을 해왔다고 합니다.


대구은행 측에서는 이 작품을 백남준이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로비에서 영구 전시하고 있는데요. 이 'TV Cello'라는 이름을 가진 백남준의 작품이 하나는 아닙니다. 이작품 이후에도 조금씩은 다른 형태의 같지만 다른 작품들을 제작 했더군요.



또한 백남준은 늘 자신의 작품에 한자나 한글로 자신의 의도를 즐겨 남겼다고 하는데요. 잠시 보실까요.


아는 한자도 보이긴 합니다만. 제 능력으로 해독은 불가합니다...ㅡㅡ;...좀 아시는 분들은 댓글로 안내 부탁드립니다..^^


옆에서 보면 아크릴케이스 안에 영상모니터 뒤쪽의 회로 기판과 전선이 그대로 드러나있습니다. 뒤편에 놓인 리모컨이 웬지 어색하기도 한데요. 어쨌든 비디오 아트의 특성상 이런 모습도 작품의 일부가 아닌가 싶더군요.


그런데 이작품이 1991년에 제작됐으니 벌써 18년전인데요. 혹 모니터가 고장나거나 영상 소스에 훼손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이 살짝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전자부품들의 수명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쩝.

우연히 들른 딱딱한 건물 로비에서 만난 색다른 예술품은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이는 단순한 눈요기만이 아니라 새로운 감동의 전파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술의 진정한 의미중에 하나는 세월을 거슬러 감동을 전하는 것이기도 할테니까요.

기회가 되는데로 가까운 화랑이나 전시회에 가볼 생각입니다. 어릴때 기회가 없었다던 핑계보다는 오늘 만나는 한점의 그림, 한곡의 음악이 더 제 자신을 풍성하게 하지 않을까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


백남준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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